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밖으로 표출된 정치 현실의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정치적 질서의 기반, 다시 말해 그것의 배후의 메커니즘에 대한 원리적 접근을 시도하며, 나아가 정치적 권력 또는 권위의 정당성은 어떻게 획득되는가를 다루고 있다.
루소는 '폭력'이 최초의 노예를 만들어 내었고, 그 노예들의 비열함이 노예상태를 영속시킨다고 보았다.
사람은 사실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로써 힘에 굴복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행위이기에 강한자가 약한자를 노예로 삼는 것을 막을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 이었고, 모든 생물학적 생태계의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 약한자가 비열함을 벗어내는 방법은 목숨을 담보로한 도전 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우는 죽음으로 귀결되었기에 노예상태는 영속되었다.
하지만, '힘과 권위' 라는 것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과거의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도 늙고 노쇠해짐에 따라 과거의 모든 영광은 뒤로하고 냉혹한 자연의 질서에 굴복되어 버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없는것이 현실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이렇게 무자비한 '동물의 법칙'을 벗어나 상호간의 약속을 통해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여기서 최초의 '사회 계약' 이 이루어 지게 되었고, 공동체 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구성원의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서로와 서로 사이에 계약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공공의 힘'을 가지게 되어 각 개인은 그러한 '공공의 힘'으로 부터 보호 받고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한 '계약' 에게만 복종함으로써 각 개인은 타인에게 복종을 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과거처럼 '힘'에 의해 누군가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이 혼자서 생존하기 어려운 많은 제약 속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집합적인 의미로 국민, 주권에 참여하는 개인이라는 뜻에서 시민, 국가의 법률에 종속된다는 의미로 신민 이라는 용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회의 계약이 강화됨에 따라 개인적인 인격은 사라지고, 이 결합행위는 하나의 집합적인 법인체 즉, 도시국가, 공화국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다수가 결합하여 한 단체를 이루면 누구도 그 단체를 공격하기 전에는 한 사람의 구성원도 해칠 수 없기에 각 구성원은 완벽한 동맹을 이루게 되고, 이런 굳건한 동맹관계가 원활히 수행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지켜야할 많은 것들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각 개인의 '자연적 신분'에서 '시민' 으로 이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도덕성 을 부여되었고, 이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이라면 태어날 때 부터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라 생각되는 이 도덕성 은 사실 인류가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한 서로간의 약속이자 비자연적이고 인위적인 단지 하나의 규약 에 불과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사회의 탄탄한 기반으로 거듭났고, 이는 사회 계약 의 기본적인 토대로써 다음과 같은 목적성을 가지게 된다.
자연적 평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들 사이에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육체적 불평등을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평등으로 대치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체력 또는 재능에 있어 불평등할 수 있는 만큼 계약에 의해 그리고 법으로써 모두가 평등하게 된다.
이렇게 사회 계약론은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최고의 계약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사실 과거의 생태계에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동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쇠퇴하게 되고 과거 가지지 못했던 자는 '무력'을 통해 때로는 '약탈' 과 '살해'를 통해 가진자의 재산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또, 무리에서 도태되거나 약자인 개체는 때로는 무리에 의해 강제로 살해되기도 하고 스스로 경쟁력이 가지지 못하는 개체를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유지하고 살벌한 긴장속에서 살아 나갔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사회 계약'을 대변하는 '법'은 실제로 항상 유산자에게는 유익하고 무산자에게는 해로울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이 계약이란 개인이 가진 재산을 타인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며 누군가의 범법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개인이 가진 재산은 그 사람의 힘과 재능에 관계없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유지될 수 있다. 이 재산은 세습이라는 형태로 계속해서 누적될 수 있지만, 가진게 없고 지킬게 없는 사람들에게 '약탈' 과 '탈취' 를 막는 '법률'은 사실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 사회에서 이런 '사회 계약'의 이면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으며, 이는 무산자에게 유산자가 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함과, 사회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유산자의 사회적 기여를 강화함으로써 실현되고 있다.
'유산자' 는 우리의 공동체가 자신의 재산을 지켜주고 과거 야생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잔혹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게 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와 시민으로써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누구보다 체제를 지켜나가고 무산자와의 합의점에 이르기 위해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의식해야 하며, 무산자라면 우리 공동체가 제공하는 무궁한 기회를 통해 성장해 나가고 훗날 공동체의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 정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읽다보니 한 가지 문구가 떠올랐어요
하루에도 백 번씩 나는 나의 삶이, 살아 있는 혹은 죽은 사람의 노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리고 받은 것 만큼 되돌려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만 하는가를 스스로 일깨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극복이 가능할텐데요...
크 역시 아인슈타인 옹이네요 ㅎㅎ
어렵지만 좋은글 ㅋㅋㅋ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어렵지만,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