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세상의 슬픈 나날들

in #kr-novel7 years ago





세상의 슬픈 나날들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다. 물론 민수의 울부짖음으로 세상이 깨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세상이 깨진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정도로 그가 사무치도록 슬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세상이 깨지도록 슬프지는 않았다. 조금 과장을 섞다보니 세상이 깨진다는 표현을 썼을 뿐이다.

어쨌든 그럼 얼마나 슬프길래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다고 했을까? 그건 민수 스스로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울지 모른다. 거창하게 세상이 깨지도록 슬프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별 것 아니면 그것만큼 민망한 것도 없을 것이다.

우선 민수가 도대체 얼마나 슬프길래 그러는가에 대해 알아보기 전,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 슬픈지에 대해 이유만 말하면 되는데 굳이 궁금하지도 않을 민수라는 인간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건 그 뒷배경을 알고나야 조금이나마 이해를 도울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에는 이 민수라는 인간이 뭘 먹고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이런 것들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평생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다. 당연히 안다 하더라도 딱히 도움되는 것은 없다.

이런 양해를 구하고 간략하게 그에 대해서 소개를 조금 해보자면 그는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의 20대 청년이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면 어느정도 감이 올 것이다. 그의 생김새, 목소리, 걸음걸이 등, 각자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어렴풋한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비슷한 친구들 중 하나다.

민수에 대한 설명은 이쯤이면 됐다.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면 그가 왜 슬퍼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끝이 없다. 조금 더 알아보자, 조금 더 알아보자하다가 그가 태어난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민수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럴 필요까진 없다.

아무튼 그런 그가 도대체 왜 슬픔에 빠졌을까? 그것도 세상이 깨지도록. 세상이 깨진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쓸만큼 사무치도록 슬픔에 빠질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쯤되면 궁금해질만도 하다.

길을 걷다보면 마주칠 수도 있을 우리의 친구 민수가 갑자기 세상이 깨지도록 슬플 일이 생긴다면 그의 슬픔을 공감까지는 못해주더라도 궁금증 정도는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에게 직접 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살짝 그 이유에 대해서 약간만 제3자를 통해 듣는 것이다.

듣고나서 왜 민수가 슬픈지에 대해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민수가 슬픈 것이지, 다른 누군가가 슬픈 것이 아니니까. 민수의 감정은 오롯이 민수의 것이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빗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픔이란 감정은 굉장히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대단히 슬픈 일이 또다른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일이 될 수 있고, 또 그 누군가에게는 또다른 어떤 일이 슬플 수도 있다. 이처럼 민수가 슬프다고해서 다른 모두가 이 내용에 관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수는 '세상이 깨지도록' 슬프다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민수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수는 그 울부짖음의 여파가 가시지 못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으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진짜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은 것은 당연히 아니라지만 그래도 그만큼 슬프게 울부짖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쯤되면 왜 모두가 궁금해할 그 이유를 바로 가르쳐주지않고 질질 끌고 급기야 궁금하지도 않는 민수의 상태에 관해서 주저리주저리 읊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 이유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민수가 세상이 깨질 정도로, 극도로 슬픔에 사무쳤다는 것이 중요하지, 민수가 슬픈 이유에 대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그냥 끝내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유를 가르쳐주겠다고 앞서 말을 한 것도 한 것이지만 여기까지 꾸역꾸역 읽은 것을 보면 분명히 민수가 왜 슬픈지에 대해서 궁금해서일 것이니까.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를 민수가 왜 슬픈지에 대해서 이토록 관심있는 사람들은 여러분들뿐일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민수가 왜 슬픈지 전혀 관심이 없다. 민수가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며 민수를 원래 알던 사람들조차도 민수가 왜 슬픈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민수가 슬픈지, 안 슬픈지조차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슬픈 일이다. 민수는 분명히 세상이 깨질 정도로 슬퍼서 그렇게 울부짖었는데 민수가 알던 사람들은 그가 슬픈지 안 슬픈지 관심도 없다니. 이것이야말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각설하고 이제 정말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민수는 저번 주에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했다. 여기에서 눈치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구입했다는 것을 언급하자마자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혹시 스마트폰이 부서졌나? 가장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물론 스마트폰이 부서진 것은 슬픈 일이다. 펜도 아니고 고가의 스마트폰이, 그것도 구입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물건이 못 쓰도록 망가졌다면 슬프지 않을 수가 없다.

스마트폰 정도는 아무렇지않게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상당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일주일 전에 산 스마트폰이 부서져 못 쓰게 되버린다면 조금은 슬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부서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실수로 연락처가 다 날라갔다던가 사진이, 혹은 파일이 통째로 다 날라갔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SNS나 문자로 말실수를 해 끔찍한 상황에 놓였을 수도 있다. 요즘 스마트폰으로는 못 하는 게 없으니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수가 스마트폰을 일주일 전에 새로 샀다는 것이다. 참고로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잃어버리는 건 아까 전에 처음 말한 부서진 것이랑 그렇게 크게 다를 게 없으니 당연히 아니다. 도대체 무엇일까. 머리를 꽁꽁 싸매서 생각을 해봐도 그 답을 쉽게 찾을 수는 없다. 여러분들이 겪은 일이 아니니까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찾을 수 없다고 해야겠다.

이제 왜 민수가 세상이 깨지도록 슬프게 울부짖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텐데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수는 조금 전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던 도중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건 일주일 전에 산 것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고 부서지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여기서 어떤 부분이 슬픈지 전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럴만도 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슬픔은 굉장히 상대적인 감정이다. 비단 슬픔 뿐만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민수에게는 스마트폰이 떨어진 것이 세상이 깨지도록 슬플 수도 있다.

하지만 민수가 무슨 이상한 친구도 아니고 고작 스마트폰 하나 떨어뜨린 것으로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다는데 말이 되질 않는다.

당연히 여기에는 숨겨진 속사정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떨어져 민수의 발등을 찍어버린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들이 점점 가벼워진다고 하더라도 그 높이에서 발등에 떨어지면 꽤나 아플 것이다. 실제로 민수는 상당히 아팠다.

그렇다고 세상이 깨질만큼 울부짖을 정도로 아플까? 다른 사람들보다 발등 쪽 신경이 많이 민감하거나 발등 쪽에 큰 상처가 벌어져 있어 떨어진 스마트폰이 발등을 자극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민수에게는 그런 증상은 없었다. 그의 발등은 지극히 정상이었고 굳이 정도를 나눈다면 굉장히 건강한 쪽이었다. 스마트폰이 발등을 찍어 느낀 고통은 꽤나 아프다고 느낄만한 그 정도에서 그쳤다. 몇분간 고통이 지속되긴 했지만 지금은 다행히 발등의 고통은 조금 얼얼한 수준에 그쳤다.

이제 슬슬 짜증이 날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민수는 슬펐을까. 민수는 발등에 스마트폰이 떨어지고 난 뒤 굉장히 슬픈 감정을 느꼈다. 아까부터 수도 없이 말한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을 정도로 슬픈 그 감정을.

단순히 아파서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꽤나 아팠고, 민수가 겪은 고통 중에서 순위를 굳이 매긴다면 20위 정도 안에는 들 수 있을 정도이긴 했지만 그런 것 가지고 울만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슬픔은 민수가 겪은 슬픔 중에서 1위를 할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 민수가 정한 슬픔 순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으니 당연히 1위를 해야 마땅했다.

민수의 발등에 스마트폰이 떨어지는 순간, 민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떨어지는 스마트폰을 잡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 부서질 정도로 높은 높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 산지 얼마 안 되서 케이스도 아직 안 끼우고 틈이 날 때마다 광이 나도록 닦을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물건이었다.

혹여나 금이라도 갈까봐 민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손은 공중에서 힘없이 붕 지나가고 그 밑으로 발등을 찍은 스마트폰이 보였다. 고통은 잠시 뒤에 찾아왔고, 그 직전에 민수는 자신의 무력함에 울부짖었다. 세상이 깨지도록!

모두들 깜짝 놀랐을 것이다. 고작 이런 이유로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다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슬픔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슬픔을 절대 비웃을 수는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민수가 울부짖은 이유가 너무나 하찮아 보이더라도 민수에게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 왔을 수도 있다. 얼마나 슬펐으면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을까.

사실 요근래 민수는 무력감을 많이 느껴왔다.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자신은 계속 방황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모님은 스마트폰이 이번에 싸게 나왔다며 민수의 스마트폰을 신상으로 바꿔주었다.

부모님 것을 바꿔주지는 못할 망정, 아직도 용돈을 받아 쓰는 입장에서 부모님이 사주신 스마트폰은 고마우면서도 참 씁쓸한 존재였다. 그런 스마트폰에 흠집이 날 수도 있는데, 그걸 막지는 못하고 발등에 찍히니 얼마나 아프고 원통스러웠을지 상상도 가지않는다.

민수는 이제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책상 위에 올려놓고 멍하니 벽을 응시하고 있다. 조금 부끄러워진 모양이다.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지만, 세상이 깨지지는 않았으니.

여기까지가 민수의 이야기다. 사람에 따라서는 민수의 슬픔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을수도, 또 그의 슬픔에 공감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세상이 깨질 정도로 울부짖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민수는 방금 자신의 행동에 민망하지 않을 수 있게되었다. 자신의 슬픔을 공감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는 자신처럼 그런 슬픔의 한계를 초월한 극한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을만한 그런 슬픔을!

민수는 세상이 깨지도록 울부짖었다.








예전에 취미로 썼던 단편소설입니다. 작년에 한두군데 올리긴 했었는데 거의 아무도 안 읽어서 한번 스팀잇에 올려봤어요. 슬픔에 관한 그냥 아이러니한 조롱섞인 짧은 소설입니다.

소설사이트가 아니라 공개적인 곳에 이렇게 올리려니 뭔가 쑥쓰럽긴 한데 이렇게 단편소설 한번씩 종종 올려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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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올리시면 종종 보도록 하겠습니다^^

넵 종종 봐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결국 민수는 신상 핸드폰을....ㅎㅎ

감사합니다! 사실 핸드폰보다는 핸드폰을 받은 발가락이 붓겠네요ㅋㅋ

자주 놀러올게요 ㅎㅎ
보팅, 팔로우 눌리고 가요 !
괜찮으시면 팔로우 부탁드릴게요 :)
좋은 저녁 되세요 ㅎㅎ

넵 좋은 밤 되세요.

종종 들러서 볼께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넵 감사합니다!

조금 색다른 단편소설이네요. 잘읽었습니다. 팔로우하고 업보트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일부러 이상하고 색다르게 써보려고 항상 하는데 색다르게 느껴져서 다행이네요

한주의 시작!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시작해요~^^

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