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피해자가 웃고 사는 모습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되는 건데??”
무슨 재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라에는 ‘해괴한 법의 잣대나 관념’이 적지 않더군요.
특히 인권이 거론될 경우에 그렇습디다.
우선, 학교폭력에 대한 논란에서 가해학생 편을 드는 ‘또라이 인권론자들’이 있습니다..
교과부의 ‘가해사실의 학생부 기재 방침’에 친전교조 교육감들이 반대를 했었지요.
“가해학생의 대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지랍니다.
잔혹하고 상습적인 성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를 도입하는데 대한 반론도 있었습니다.
문명인이기를 포기한,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강간범에게 “문명인의 잣대를 대야한다”는 게 이 나라 인권론자들의 주장이지요.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거론 자체에 경기를 일으키는” 세력들도 있구요.
그런 거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이 나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맞어?”
제가 진행하고 있는 재판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일본의 사법부와 함께합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도 ‘해괴한 법의 잣대나 관념’이 곳곳에 있지요. 그래서 더 이 재판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사례하나 늘리는 것만으로도 일본에서 세금 내고 사는 사람의 인권, 여성의 인권,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이 조금은 나아질거라 믿으며...
아, 그렇군요.
그런 믿음에서 하는 소송이라면 인생의 많은 것을 기울일 가치가 있겠지요.
“소기의 성취 이루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