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4] Lucifer Effect(3)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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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lude - Blackened
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Chapter 2 - HERO(1)
Chapter 2 - HERO(2)
Chapter 2 - HER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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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 Vertigo(1)
Chapter 3 - Vertigo(2)
Chapter 3 - Vertigo(3)
Chapter 3 - Vertigo(4)
Chapter 4 - Lucifer Effect(1)
Chapter 4 - Lucifer Effect(2)

“하,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범인을 군인 출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어차피 그 정도는 군필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잖아요. 군용 대검이야 암시장 같은 데서 구할 수 있었을 거고….”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아요. 그렇다 해도 범인처럼 전술학 교범에 나온 그대로 능수능란하게 대검을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이건 오랜 시간 이런 동작을 반복 숙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요. 범인을 상당기간 체계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일 거라 보는 이유가 그겁니다. 대한민국 모든 군인이 그 정도의 훈련을 받지 않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굳이 M-7 군용대검을 사용한 것도, 그게 범인의 손에 가장 익숙한 무기이기 때문 아니겠어요?”

낯선 무기를 사용했다면 범행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 서투름이 드러나기 마련일 거다. 복잡한 범행과정을 거치면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대처한 자라면, 자신이 사용할 무기선택에도 신중을 기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대령 주위 인물을 중심으로, 고도의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을 추려내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그러던 중 오늘 심상치 않은 제보가 들어와서요. 신일 씨도 아는 분이죠? 류준 씨.”

“류준? 류 대위 말씀이십니까?”

“예, 그럼 최근 소식도 들으셨고요?”

“예, 얼마 전에 뺑소니 사고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바로 그 류준 대위의 사고와 관련된 얘기에요. 안 그래도 류준 대위의 뺑소니 사고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있어 재조사가 진행 중이었어요. 그런데 마침 오늘 그 미망인이라는 분께 연락이 왔더군요. 류준 씨 앞으로 수상한 편지가 도착했다고.”

두근. 신일은 자기도 모르게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하지만 지금 이 여자, 두 사람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는 거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했으면 좋겠는데요.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그 편지를 신일 씨가 좀 봐 주셨으면 하는데….”

신일은 다시 가파른 경사로에 놓인 바위덩어리를 떠올렸다. 등 떠밀려 올라선 곳, 그의 발밑으로 아찔한 천 길 낭떠러지가 보인다. 벼랑 너머 어둠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분명 역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를 품고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괴물, 그의 구역질나는 악취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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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판도라(Pandora), 1896

디딤 발이 땅에 뿌리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꿈쩍치 않는다. 이래도 되는 걸까?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는 순간, 아마도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그럼 신촌에서 뵙죠. 한 시간 정도 후에 괜찮으시겠어요?”

수사관과 약속을 잡으면서도 신일은 감은 눈을 차마 뜨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그쪽에 도착해서 연락드릴게요. 아 참, 그리고 혹시 그 때 같이 있었던 사람 중에 아직 연락 닿는 사람이 있으면 참조할만한 게 있는지 한번 알아봐 주시겠어요?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현기증이 난다. 신일은 잠시 몸을 휘청거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밤새 자신을 괴롭힌 악몽이 다시 그의 눈앞에 일렁이고 있다. 수사관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건, 류 대위의 사고에서 한 대령의 죽음과 관련된 어떤 단서를 찾아냈다는 신호일 게다.

「제길, 이거 이상한 일에 휘말려버렸군.」

볼멘소리를 곱씹으면서도 신일은 벌써부터 휴대폰 통화목록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는 우선 수강에게 연락해 볼 심산이었다. 혹시 주위에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지, 한 대령과 류 대위, 혹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는지, 수강이라면 나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수강아. 한 대령님 살인사건 범인이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단다.
의심되는 점이 있거나, 혹시 내가 알아야하는 정보가 있으면 연락 부탁해.」

신일은 그제야 아까 태우지 못한 담배에 불을 댕겼다. 한 대령과 류 대위, 둘의 공통점이라면 뭐가 있을까. 출신과 계급, 직책과 보직, 심지어 성격까지 도무지 비슷한 구석이라곤 없는 둘이었다. 역시 지난 몇 년 간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사이라는 게 두 사람의 유일한 접점일 테지. 그렇다면, 그 기간 중 그들과 함께 근무한 자라면 누구나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될 수 있다.

순간, 알싸한 소름이 뒷목을 파고든다.

수사관이 굳이 약속까지 잡아가면서 날 따로 보자고 한 건 이 때문인 건가.

이건 분명, 의도된 만남이다. 아까 그녀의 농담에는 성난 가시가 숨어있었던 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야말로 여태껏 그녀가 취합한 모든 정황증거에 들어맞는, 거의 유일한 용의자가 아니던가. 그런 줄도 모르고 그녀가 던진 미끼를 날름 집어 들다니, 때늦은 열패감에 신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신일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지도 모른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모습에 신일은 오싹해진 팔뚝을 보듬었다.

묵직한 전화기 진동이 손끝에 전해질 무렵, 신일의 손에 들린 담배는 어느새 반도 넘게 타들어가 있었다.

“여보세요?”

“형! 저 수강이에요. 방금 범인이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군인 출신일 거라고 하셨어요?”

수강은 통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달리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 그래, 수강아. 미안하다. 많이 놀랐나 보구나?”

“아녜요, 다름이 아니라… 형, 아까 전에 제가 괜히 형 신경 쓰이게 할까봐 말씀 안 드린 게 있는데요.”

“안 한 얘기?”

“예, 그게 저…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저희 같은 전술학 조교 출신들도 용의자에… 포함되는 거겠죠?”

“일단은… 그렇다고 봐야겠지.”

“형… 그럼 저기… 그 마피아라는… 형이 아까 말한 범인의 메시지 말이에요.”

“마피아? 범인이 한 대령님 몸에 새겼다는 그 글자 말이야?”

“예, 그 메시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혹시 뭐가 좀 밝혀졌나요?”

“글쎄다. 아직 잘 모르겠는데? 왜? 무슨 일이야?”

“그게 말이에요… 이게 이번 사건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 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뭔데? 너 뭘 알고 있는 거야?”

“그게… 사실 제가… 군에 있을 때… 마피아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거든요.”

초조하게 넘기던 담배연기가 목에 걸렸다. 눈이 시뻘게지도록 기침을 토하면서도 신일의 눈빛은 예리하게 반짝거렸다. 이건 기대 이상의 단서다, 틀림없이.

“그, 그런 사람이 있었어? 누군데? 나도 아는 사람이야?”

“그게 사실….”

“누구야? 그게 누구냐니까?”

“…진하 형이요.”

누구, 라고? 순간, 먹먹한 이명(耳鳴)이 신일의 귓가에 울린다.

“뭐라고?”

“진하 형이요. 마진하 병장의 별명이… 마피아였어요.”

그럴 리가, 그의 별명이 마피아일 리 없잖은가. 녀석의 별명은 입대 후 전역할 때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정의의 사도 같은 의로운 성품에 발음까지 비슷해 붙여진 그 유니크한 별명, 진하가 마징가 이외의 무언가로 불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무슨 소리야. 걔 별명은…”

“형, 간부님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요. 사실 진하 형은 그 마징가라는 별명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진하가?”

“예, 그게 워낙 형 어렸을 때부터 불리던 별명이라 자기보다 후임인 애들까지 자기를 그렇게 부르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거든요. 간부님들이야 별로 상관없었겠지만, 저희한테는 그게 엄청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그래서 진하 형이 선임 잡은 다음부터 우리 중 누구도 형을 마징가라고 부르지 못했어요. 그래서 형 콜사인도 그즈음부터 바뀌었고….”

“그럼 마징가에서 바뀌었다는 콜사인이…”

“예, 진하 형이 선임 잡은 다음부터 제대할 때까지… 진하 형 콜사인은 마피아였어요. 형, 전 사실 이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괜한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형, 이번 일, 진하 형하고는 정말 상관없는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