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게 탐구한 사랑의 모양

in #kr7 years ago

여섯 살 아이는 그날도 텔레비전 앞에 앉았고, 방영되는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좀 이상한 영화였다. 아가미 달린 양서류 인간이 여자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이야기. 아이의 기분이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 느낀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가 바로 ‘사랑’이란 걸.

둘이 같이 물속을 헤엄치는 장면이 특히 좋았다. 사람이 아닌 것의 곁을 맴도는 사람의 몸짓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아이는 소망했다. 저 둘이 영원히 함께 있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야기의 결말은 소년의 기대와 달랐다. 총을 맞고 혼자 물속으로 사라진 아가미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알 수 없는 상실감으로 바뀌어 마음의 심연에 가라앉았다.

<해양 괴물(The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54)의 아름다운 물속 장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여섯 살 꼬마가 어른이 되었다. ‘좀 이상한 영화’를 보았으므로 더 이상 여느 일요일과 같을 수 없게 된 그날의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 이상한 영화’만 만들어 관객을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게 하는 영화감독으로 자랐다.

<크로노스>와 <악마의 등뼈>가 그랬다. <헬보이> 시리즈와 <퍼시픽 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그가 필생의 역작을 만들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니었다.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오래전 그날, 알 수 없는 상실감으로 바뀌어 마음의 심연에 가라앉은 라스트 신. 평범한 사랑이 아니라는 이유로 야멸차게 떼어놓던 그 엔딩을 마침내 마음의 표면으로 길어 올리며 감독은 말했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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