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는 2008년에 터졌던 서브 프라임 사태를 다룬다.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월스트리트는 허위 정보를 제공하고 사람들의 돈을 빨아들인다. 그 돈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월스트리트의 사기극은 거품이 한계치에 다다른 상태서야 드러났다. 사기극의 결말은 참혹했다. 기라성같던 금융회사들이 무너지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빅쇼트>의 결말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미국 경제는 크게 휘청였고, 위기를 예측했던 4명은 그 대가로 거대한 수익을 챙긴다. <빅쇼트>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결말을 향해 치닫는 과정들이다.
<빅쇼트>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의 모호한 결계에 걸쳐있다. 줄거리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캐릭터들은 '제4의 벽'을 넘어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어려운 단어에 혼란스러워할 관객들을 위해 마고 로비나 셀레나 고메즈가 실명으로 등장해 용어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빅쇼트>는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가 직접 관객에게 "이건 영화에요"라고 말을 검으로써, 역으로 관객들과 거리를 둔다. 극단적인 소격효과다. 다양한 장치들로 영화는 관객에게 이 상황들이 실제 상황이었음을 환기시키고, 이를 통해 당시 월스트리트가 얼마나 타락해있었는 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주인공에게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저 빌어먹을 개수작이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질 동안, 저 4명의 괴짜들은 무얼 했단 말인가?
<빅쇼트>는 크게 네 팀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각 팀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접점은 제한적으로만 발생한다. '시스템의 부조리를 파악했다'는 점은 공통이나,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서브프라임은 가짜'라는 자신들의 예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들 중 누군가는 현장조사를 나서고 누군가는 통계자료를 뒤진다. 집 100채에 4명 뿐이 살지 않고 강아지 이름으로 대출을 받는 상황, AAA 등급 중 70% 이상이 허수인 상황을 목도한다.
이러한 관찰은 서브프라임 붕괴가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또 다시 드러난다. 서브프라임 가치가 폭락해도, 채권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마이클 버리는 기다릴 뿐이고, 마크 바움은 평가사로 쳐들어간다. 제이미와 찰리는 언론과 감시단체에 말을 건다. 전자의 조사가 '금융 시스템의 부실'을 말했다면, 후자의 행동은 '사회 전체의 타락'을 보여준다. 평가사들은 고객을 잡기위해 정보를 속이고, 금융회사들은 더 적은 손실을 내기 위해 억지로 등급을 유지시킨다. 언론은 금융계의 타락을 목도하고도 침묵하며, 이를 감독할 정부기관은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금융계만의 문제가 아닌 미국 전체의 시스템 문제였고, 그 대가는 미국 전체에게 돌아왔다. <빅쇼트>는 이들의 행동을 통해 당시의 시스템이 얼마나 문제였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빅쇼트>의 주인공들은 이 거대한 괴리를 남들보다 빠르게 알아챘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시스템의 타락을 실감한다. CDO의 시스템이 '똥'임을 알았을 때, 대출심사가 어이없게 진행될 때마다 마크 바움의 표정은 극도로 썩어간다. 관객들은 그의 표정을 보며 쓴 웃음을 짓는다. 시스템은 무너질꺼고, 미국은 휘청거릴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주인공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는 관객도 마찬가지다. 파멸로 치닫는 열차에 주인공과 관객이 같이 올라탔다.
그러나 관객은 주인공들과 동화되지 못한다. 관객은 주인공들이 엄청난 수익을 낼 것임을 안다. 예정된 승자들이 고난에 빠지는 순간은 위험해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수익은 사람들의 돈이고, 그들의 환희는 사람들의 고통이다. 그들 역시 이를 안다. 마크 바움은 '이렇게 하면 우리도 그들과 같아진다'라고 고뇌하고, 벤 리커트는 찾아올 수익에 환호하는 찰리와 제이미에게 '니들의 성공은 미국의 붕괴'라며 일갈한다. 돈을 찾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돈으로 주머니를 채우던 금융 그룹들과 그들의 행동은 다른 것이 없다. 주인공들은 그저 시대를 잘 읽어냈던 투자자들이었을 뿐이다. 800만명의 실직자와 600만명의 무주택자를 등에 업고 그들만의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때문에 그들의 승리는 통쾌함보다는 씁쓸함을 안겨준다. 주인공들의 행동은 개인의 영역에 머무를 뿐, 사회를 바꾸지는 못했다. 실제로는 그들 역시 사회에 경각심을 주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영화는 의도적으로 주인공들의 사회적 활동을 배제해버린다.( 마이클 버리가 정부에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나 찰리와 제이미가 금융기업에 건 소송 등은 마지막 텍스트로만 간략히 나온다.) 사태 이후, 금융그룹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변한 것은 없다. 처벌 받은 사람은 한 명이고, 금융계는 이름만 바꾼채 하던 일을 한다. 피해는 사람들이 나눠가졌다. 시스템 밑에서 성실하게 월세를 내던 사람들, 금융기업에 근무하던 말단 직원들, 서브프라임 광풍의 막차에서 희망을 팔던 펀드매니저들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얼굴이 나오는 씁쓸함은 분노로 치환된다.
'기초자산이 망가지면, 파생상품의 가격은 하락한다'. 금융상품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다. 4명의 주인공들이 처음 서브프라임 시스템의 문제점을 접했을 때, 이들은 저 명제에 입각해 수익을 거두려 시도했다. 금융의 일부가 문제일 뿐, 다른 부분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은 믿었다. 그들은 틀렸다. 기초자산은 망가졌지만, 파생상품은 하락하지 않았다. 믿었던 명제가 배신한 순간,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은 발만 동동 구르고,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은 직접 금융계와 부딫힌다. 벤 리커트는 '금융계의 비인간적인 면이 싫다'며 환멸을 드러내고, 내부자인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은 그저 침묵할 뿐이다. 배우들은 각자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표정만으로 모든 이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스티브 카렐의 열연은 인상적이다.
이들 중 자레드 베넷이 <빅쇼트> 대부분의 나레이션을 진행한다는 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는 영화의 비판대상인 월스트리트 소속의 인물이고,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타인의 피해'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돈이 우선인 금융시스템에서, 그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고 많은 수익을 얻었다.(그리고 스스로도 말한다.) 그런 그가 경제 위기 이후의 상황을 설명할 때, 벤 리커트와 마크 바움이 보인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은 공허한 목소리가 되어버린다. 돈은 도덕을 이겼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빅쇼트>는 행복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럼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전개된다. 코믹스러운 장치 설정과, 뜬금없이 끼어드는 찬조설명, 다소 가벼운 나레이션 등을 통해 무거운 주제를 밝게 그려낸다. 킥킥거리며 2시간을 보고나면, 머릿 속에는 월스트리트에 대한 환멸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만이 쌓이게 된다. 복잡한 수식과 자세한 설명 없이도 <빅쇼트>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거의 완벽하게 설명했을 뿐 아니라, 사태가 진행되며 드러난 월스트리트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정된 비극을 향해 걷지만 걸음걸이는 매우 가볍다. <빅쇼트>는 주제의 진중함과 스토리의 가벼움을 모두 취한 수작이다.
"진실은 시와 같다. 많은 사람들은 시를 혐오한다."
경제학도라 그런지 이런 류의 영화도 즐겨보는데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빅쇼트' 꼭 찾아 보겠습니다. 이 감독의 전작들을 다 봤는데 그런 점에서도 기대가 됩니다~
newbie 'meconomic'입니다 자주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마이크 잡고 외치는 "붐!" 이었죠. 첫시작 때나오는 마크트웨인의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이것도 좋았고요.
브레드피트 플랜B의 숨은 명작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영화의 배경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이 비트코인을 만든
배경 중 하나라는 점이죠.
보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