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 살기] 엄마 전화

in #kr6 years ago (edited)

[질투는 나의 힘]을 지나 [빈 집]을 거쳐 [엄마 걱정]을 엄마 생각으로 자꾸 헷갈려하면서 기형도 시인의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를 상상한다. 한 단이 1~1.5kg, 열무 삼십 단이면 최소 30kg이 넘는 무게다. 이러면서 한 때 우리 엄마도 서류봉투를 접고 풀칠해서 시장에 이고 갔다는 사실을 몇 번 떠올릴 때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란 백열등 밑 누런 종이들과 시큼한 풀냄새가 가득한 방 가운데 동생과 내가 열심히 접고 엄마가 열심히 풀 바르던, 스스로 떠올려 본 적 거의 없는 당시의 희미한 풍경이 뚜렷한 엄마의 전화 목소리에 금세 묻혀버린다. 이제 엄마는 과식과 스트레스를 경계하는 너무 모던한 신여성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물론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안 오시는 엄마를 기다리던 시인과 같은 마음의 나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시인은 배춧잎 같은 엄마 발소리를 기다렸지만 나는 술 취한 아버지의 송곳 같은 구두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가슴 졸이며 엄마와 함께 언 밥처럼 방에 담겨 있어야 했다.

길어지는 통화에 매번 전화비를 걱정하시면서도 옛 이야기가 시작되면 오밤중 해는 시든지 오래 내 손을 잡고 이리 저리 지아비의 폭력을 피해 내달리고 숨던 때를 눈물을 훔치며 때론 치를 떨며 토해낼 때면 다시 나조차 어둡고 무서워진다.

이렇게 엄마 걱정은 엄마 전화가 되고 엄마 전화는 어두운 폭력의 기억으로 물들어 버린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행 내 유년의 윗목이다. 제목을 [엄마 걱정]보다 이걸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튼 지금은 이중창에 엑셀 파이프를 촘촘히 방바닥에 시공하다 못해 화장실 바닥까지 난방하는 추세라 간신히 바깥바람을 피한 온돌방에 공존하던 시베리아 같은 냉골과 장판을 까맣게 만들 정도의 열기를 동시에 겪어 보지 못한 이들에겐 윗목의 온기가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추운 두 손을 맞잡아 이끌어 주시던 할머니 이불 속의 윗목 그리고 얌전히 묻혀 있던 뜨거운 밥공기들, 한 이불 속에서도 윗목을 찾아 자연스럽게 옮겨지던 몸의 기억들, 이런 기억들이 점점 희미해지듯이 많은 날을 남 몰래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렸을 우리 엄마의 아랫목의 기억도 함께 시나브로 희미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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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어쩌면 우리어머니 얘기랑 그리도 똑같은지요.
어머니께 전화좀 드려야겠습니다

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