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뇨리아 광장 부근의,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
아르노 강 방향으로 내려가면..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가 나왔는데..
1345년에 건설된..
‘오래된 다리’ 라는 의미의.. 이 다리는..
로마 시대의 마지막 다리. 로 알려져 있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을 모두 파괴 했지만..
베키오 다리만은 남겨두었던.. 일화로 유명했다.
지금으로 치면.. 주상복합 교량(?!) 같은..
베키오 다리에는.. 원래..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메디치 가’ 의.. 페르디난도 1세가..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며 모두 추방 했고..
대신에, 금세공업자들이..
다리 위의 상점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후로 지금까지..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는..
보석 전문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보석,
귀금속 공예품 도시로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14세기부터, 베키오 다리가..
상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가게를 차리면..
세금 면제의 혜택이 있었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통을 인정하는 듯.. 다리 위에는..
피렌체 출신의 가장 유명한 금 세공업자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기념비. 가 서 있었고..
이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처음 만난 장소이자..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 장소인..
베키오 다리. 의..
첼리니 흉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에..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그 증표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강에 던져 버리면..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이 전설을 실행에 옮기면..
다리에 손상을 입힌다고.. 벌금을 물게 했다.;;;
베키오 다리에는..
‘코리도이오 바사리아노’ 라고 이름 지어진..
하나의 통로가 존재했는데..
그 통로는.. 베키오 궁전과 피티 궁전을 연결했고..
평민들과 섞이기(?!) 싫어했던..
페르디난도 1세가 만든 것. 이라고 했다.
베키오 다리를 지나면..
팔라초 피티 궁전 (Palazzo Pitti) 이 나왔는데..
이 궁전은.. 원래..
피렌체를 호령했던.. ‘메디치 가문’ 의 라이벌인..
‘피티 가문’ 에서 건립한 궁전. 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피티 가문의 죽음과 파산으로..
메디치 가문에 넘겨져서.. 그들의 거처와..
관공서로 사용 했던.. 주궁! 이 되었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위압적인 모양의.. 피티 궁전은..
그 규모와 웅장함이.. 보는 사람을 압도! 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해서 증축되었다는..
이 궁전 내부의 방들도.. 호화롭기 그지 없었었는데..
현재, 피티 궁전은..
메디치 가문의 화려한 컬렉션을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피티 궁전의 정원. 인..
보볼리 가든 (Boboli Garden) 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 으로 유명했는데..
산책로만 걸어도.. 거의 2시간 코스..
라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 였다.
피티 궁 정원의 끝자락에 있는..
산조르조의 비탈길을 올라가면..
메디치 가문의 페리디난도 1세가..
도시를 방어하고 메디치가의 통치를 위해 세운..
벨베데레 요새 (Forte di Belvedere) 가 나왔는데..
(정식 명칭은..
‘산조르조 델 벨베데레의 산타마리아 요새’ .)
전략적 요충지. 였던 만큼..
피렌체 시내와 아르노 계곡이..
매우 잘 바라보이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정말 근사했고..
무엇보다.. 베키오 다리의 야경은..
정말 너무 환상적!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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