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환호하는 글에 태클을 걸다 - 김상봉 교수의 칼럼에 대해

in #kr5 years ago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쓴 칼럼이 최근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냥 화제를 모은 것이 아니라, 거의 찬사 일색이었습니다. 명문이라며 꼭 일독을 권한다는 포스팅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읽어봤습니다.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이 글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지, 찬사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좀 빠르게 썼을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서저랑 비슷한 생각 혹은 다른 생각으로 비판하는 글들도 꽤 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찌 볼지 궁금해서 해당 칼럼과 제 비평을 올려보지만, 이 공간서 서로 격한 댓글은 달며 논쟁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서로 예의를 지키며 하는 논쟁은 환영입니다.

김상봉, 씨알의 철학 - 서울대생의 촛불, 너릿재 너머의 아이들

아래는 이 칼럼에 대해 제가 쓴 글입니다.


이 글이 왜 이렇게 많이 공유되는걸까. 이 글을 선해하면 '입시 자체가 불평등의 재생산장치'가 되었단 유의미한 지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지적이 울림이 있어서일까. 그거라면 이해하겠는데, 그 지적으로 가기 전에 몇몇 걸리는 지점들이 있다.

일단 서울대 집회 학생증 검사의 사유를 "외부의 정치 세력의 개입을 우려해서"란 점을 인지하면서도 "촛불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내부와 외부를 나눌 까닭이 무엇이며, 처음부터 정치적인 촛불집회에 누가 오든, 같이 동참하겠다는데 마다할 까닭은 또 무엇인가?"라고 단정 짓는다. 유시민 작가가 서울대 집회에서 "무슨 손해를 본다고, 마스크는 좀 안 썼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학생들이 왜 정치집회로 보일지 우려하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드러나는걸 꺼리는지는 그저 폄하할 것이 아니라, 이해를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건 다른 세대가 가진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의 크기가 다르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은 엄혹했던 시절에 출신을 가리지 않고 연대하며 고문과 죽음마저 감수했던 고통과 두려움의 기억이 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정치집회란 딱지, 얼굴 알려지는 것은 그다지 고통도 불이익도 아니라며, 왜 마스크 쓰고 학생증 검사를 하냐고 힐난할 수도 있다. 우린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연대했는데, 너네는 왜 그렇지 않느냐는 시각인데, 난 그런 시각이 불편하다. 지금은 유명인 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거의 모든 기록이 온라인에 남는 세상이다. 그런 사람이 느끼는 오해에 대한 두려움, 알려지는 것에 대한 우려는 이미 사회에서 기득권인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이 글은 시종일관 서울대, 고려대 집회 주최자, 참석자들이 '배타적인 학벌 기득권을 수호'하려고 한단 것을 전제로 작성됐다. 그러니 그 촛불은 "닥쳐올 분노의 심판 날에 그 불장난이 그대들의 성채를 잿더미로 태워버릴 때까지!"라고까지 평가한 것이겠지. 그런데 이렇게 볼 수도 있다. 나도 서울대, 고려대 집회의 주최자, 참석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취지인지,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아주 자세하게는 모른다. 그들이 만일 자신들의 '학벌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모였다면 당연히 비판 받아야겠지만, 그냥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 것이라면 그 자리가 '서울대'와 '고려대'라서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조국 후보자가 '기득권이라고 왜 개혁을 주장하면 안 되는가'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학벌기득권 수호를 위한 배타적인 집회'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면 최소한 그들의 생각을 더 들어보고 판단을 해야한다.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성실성을 갖춰야 한단 의미다.

이 글에 불편한 지점은 하나 더 있다. 김상봉 교수는 "서울대 촛불은 그것(학벌로 계급 재생산)을 은폐하기 위한 연막"이라며 "학생증 검사가 없더라도, 광주나 나주의 대학생들이 그 촛불을 같이 들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정말 전남대, 동신대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쓴 것인가. 내 페북 타임라인만 봐도 이번 조국 논란에 대한 의견은 엄청 다양한데, 전남대와 동신대 학생들이 김 교수가 단정하는대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만일 그저 '계급'의 문제를 제기하며 전남대와 동신대 안에서도 촛불을 들고 대자보를 쓰는 학생이 있다면, "너 서울대, 고려대 애들에게 놀아날거야"라고 할 것인가. 꼭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이 아니라해도, 지금 만일 촛불 들려고 했던 전남대 학생이 있다면 이 칼럼을 보고 얼마나 계면쩍을까.

학벌기득권, 스카이캐슬 비판은 너무 소중하고, 정말 필요하다. 그런데 누군가를 제물로 삼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얘긴데, 굳이 이렇게 해야 했을까. 난 이런 글이야말로 서울대와 전남대의 연대를 가로막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서로 출신도 성분도 달랐던 백태웅, 은수미, 박노해가 연대했던 세대들은 정말 고민해 봤음 좋겠다. 왜 이 사회에 연대의 문화가 사라졌는지. 여전히 연대하는 자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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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고맙습니다.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다만 저는 김상봉교수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시 제가 아무리 비판을 해도, 김상봉 교수 글이 가진 힘이 대단하군요 ㅎ

글 잘 읽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는 발로 뛰는 노력도 중요해 보입니다.

그냥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 것이라면 그 자리가 '서울대'와 '고려대'라서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조국 후보자가 '기득권이라고 왜 개혁을 주장하면 안 되는가'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개혁을 주장"하는 것과 동급이 되려면 목소리를 낼 때, '조국 아웃'이 아니라 '입학 제도 개선' / '학벌 사회 타파' 등 본인들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사회를 위해 해야만 하는 올바름에 대한 얘기여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쓰고보니 전 글의 "공정 균형사회 요구"와 이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