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오늘은 MBC 계약직 아나운서 관련한 중앙일보 기사(복직한 MBC 아나운서들 "직장 내 괴롭힘 당하고 있다" 호소를 읽었습니다.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을 공유합니다.
(3월 15일 부당해고 무효확인소송 기자회견에 참여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 출처 미디어오늘)
계약직 괴롭히기가 적폐청산?
일단 MBC 계약직 아나운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6~17년 안광한, 김장겸 사장 당시 MBC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이들입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 MBC 경영진은 파업에 참여한 아나운서들을 부당하게 전보시켰고, 이들 중 일부는 MBC를 떠났습니다.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MBC 경영진은 아나운서 11명을 '계약직'으로 채용합니다.
2016년 말부터 이어진 촛불집회와 이어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됩니다. 2017년 12월 MBC에서 해직됐던 최승호 PD가 MBC 사장으로 임명됩니다. MBC 언론탄압에 분노했던 많은 시민들은 MBC에서 '적폐청산'이 이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칼로 무 베듯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MBC는 2018년 5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하고 대신 아나운서 시험을 다시 치르라고 합니다. 11명 중 1명을 제외한 10명은 합격하지 못했고 이들은 2018년 6월 MBC를 상대로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노동부에 냅니다.(구제신청 제출한 사람은 9명)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는 2번에 걸쳐 MBC에 아나운서들에 대한 원직복직을 주문합니다.
최승호 MBC 사장은 취임 이후 MBC 사내 적폐세력을 손질합니다. MBC 블랙리스트 작성에 가담한 최대현 아나운서, 권지호 기자를 해고했고, MBC 사내 언론탄압에 앞장선 간부진들을 징계합니다. 배현진, 김세의 등 MBC 파업을 비난하거나 노골적으로 특정 정치성향을 드러낸 인사들은 퇴사 수순을 밟습니다.
하지만 9명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이와 같은 '적폐'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언론사 구직활동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언론사에서 원하는 인력의 숫자는 매우 적은 반면 지원자는 많습니다. 나는 보수니까 한겨레는 거르겠다, 나는 진보니까 조중동은 안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특히나 정원이 적은 아나운서 직군에서 MBC를 배제하고 구직활동을 하는건 넌센스입니다. 수년간 MBC, KBS에서 신입 아나운서를 채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2016년 MBC에서 아나운서 신규 채용 공고를 낸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까지 몇년만 더 참아라'란 말은 청년 구직자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배부른 비판일 뿐입니다.
9명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자신들이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마찬가지 절차로 입사했고, 입사한 이후에도 정규직 아나운서와 마찬가지 일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중노위에서도 아나운서 업무는 MBC의 '상시 지속적 업무'이며 사용자인 MBC가 계약 갱신을 거절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012년 MBC 파업 이후 채용된 '시용기자'들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습니다. 2018년 12월, MBC에서는 파업 대체인력에 대한 고용을 유지하고, 각 인물이 공영방송사 구성원으로 적합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면 개별적으로 징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6~17년 입사한 아나운서들이 MBC 구성원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면 그에 맞게 처분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최승호 사장은 '계약만료'라는 형식으로 전원 해고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9명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최승호 이전 MBC 체제에서 블랙리스트 등 언론탄압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파업에 동참한 선배들을 비난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MBC가 만약 아나운서 9인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계약직과 계약해지는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 할게 아니라 9명과 계약을 종료해야만 할 합리적인 이유를 내놔야 할 것입니다.
(5월 22일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미디어오늘
최승호의 노동탄압 지적한 민변 변호사
기사 중에 '류하경 변호사'란 사람이 나옵니다. 5월 30일 미디어오늘 인터뷰 기사를 보니 민변에서 활동하는 류하경 변호사가 맞습니다. 세상을 편가르기로 재단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될 수도 있습니다. '좌파'인 민주노총 언론노조 출신의 최승호가 사장인 MBC의 반대편에 역시 '좌파'인 민변 변호사가 서 있으니까요.
제가 알기로 류하경 변호사는 민변 내에서도 노동인권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진 사람입니다. 민변 변호사들 중에서도 현장투쟁에 늘 앞장서는 권영국 변호사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민변 변호사가 왜 민주노총 출신 MBC 사장에 반대할까?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류하경 변호사의 말을 들어 봤습니다.
지난 5월 14일 서울서부지법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MBC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나운서들은 다시 MBC에 출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류 변호사는 법원 판결 이후 출근한 아나운서들 중 7명이 별도공간에 배치됐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니라 12층 콘텐츠사업국 안 별도 공간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또한 회사 게시판과 이메일 접속도 불가능하며, 회사로부터 소송이 끝날 때까지 업무를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들었다고 합니다.
2012년 1월 언론노조 MBC본부는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을 시작합니다.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파업 이후 대기발령, 정직, 교육발령 등의 처분을 받습니다. 몇몇 아나운서들은 흔히 '신천교육대'라 불리는 곳으로 신천 아카데미로 발령나 샌드위치 만들기, 전부치기 등을 교육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MBC 아나운서들은 400여일 만에 현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김재철, 김장겸 MBC 전 사장 시절의 내부 언론탄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최승호 현 MBC 사장입니다.
류 변호사는 "노동자를 회사에서 쫒아내려고 고사시키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까. 창고 같은 곳으로 격리하거나 전산망을 차단하고, 업무를 주지 않고, 근태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최승호 MBC 사장이 이런 방법까진 하지 않겠지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류 변호사는 언론노조 MBC 본부가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MBC 노조원들이 적폐 시절 입사한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가지는 '껄끄러운 감정'은 이해하지만, 이런 분노의 방향은 "구 경영진의 구조적 악행"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류 변호사는 "MBC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지원한 청년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다 묻는 것은 가혹하다. 감정이 껄끄럽다고 부당하게 해고해선 안된다"며 "노조 지도부가 용기를 내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승호 사장은 2003년 언론노조 MBC본부 제5대 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2012년 MBC 파업 이후 해고됐고, 이후 뉴스타파에서 수년간 앵커로 활약해 왔습니다. MBC 파업 이후 김재철, 김장겸 등의 내부 언론탄압, 해고와 정직, 블랙리스트 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사자입니다.
이런 최 사장의 과거 스토리가 있기에, 최 사장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참여한 이들을 쫓아내고, 적폐 언론인들을 징계했을 때 진보적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최 사장이 16, 17 사번 아나운서를 쫓아내는 일에 대체 누가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까.
류하경 변호사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벌주는게 진보는 아닙니다.
그러게요. 저도 그 감정의 껄끄러움 탓에. 이 사건은 그다지 분노가 안이는게 사실이에요. 다만 류하경 변호사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진보가 '위선'으로 보일만한 일들을 좀 안했으면 좋겠네요. 류하경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인연은 없지만 예전부터 믿고 보는 분들 중 하나였습니다. 류 변호사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