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3)
카이사르의 사전에 ‘후보 단일화’란 없었다
당시 로마에는 두 개의 정파가 존재했다. 하나는 집권여당격인 술라의 파벌로 이들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왔다. 반면에 야당 역할을 해야 할 마리우스 세력은 술라파의 위세에 눌려서 춥고 배고픈 재야 신세를 면하지 못해온 터였다. 카이사르는 힘없이 사방에 뿔뿔이 흩어진 마리우스 추종자들을 일거에 일으켜 세우는 대담한 정치적 이벤트를 기획했다. 야음을 틈타 카피톨리움 위에 마리우스의 실물을 본뜬 조형물들을 세워놓은 것이다.
현직 조영관의 이와 같은 도발적 행위는 지하에 잠적해 있던 마리우스파를 단숨에 지상으로 불러내 조직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무기력하게 고립분산된 재야세력을 강력하고 결집된 야당으로 순식간에 탈바꿈시켰다. 여당의 아성인 원로원은 경악했고, 민중파의 본거지인 길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로 흘러넘쳤다. 아직은 원내 소수파 지위에 지나지 않던 친 카이사르 성향의 원로원 의원들은 한껏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사르가 머잖아 모든 반대파를 제압하고 로마에서 제일가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카이사르의 인기가 신기루가 아니었음은 많은 정치인들이 노리고 있던 자리인 최고 제사장직 선거에서 명징하게 입증되었다. 이사우리쿠스와 카툴루스, 그리고 카이사르 세 사람이 출마한 이 선거에서 카이사르는 카툴루스 캠프의 은밀한 후보단일화 제안을 일축하고 최선을 다해 완주한 결과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극적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사전에 현대 한국정치에서 난무하곤 하는 드롭(Drop), 곧 중도사퇴란 없었다.
투표일 아침, 카이사르는 모친이 자식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들을 배웅하자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안 돼봤자 귀양살이밖에 더 하겠습니까”라며 결기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카이사르가 거둔 뜻밖의 승리에 보수파들은 당황해하며 키케로를 탓했다. 키케로가 카이사르를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탓이었다. 그 절호의 기회는 카틸리나 사건 당시 찾아왔었다. 카틸리나는 기존의 헌정체제를 전복할 쿠데타를 획책하다가 키케로에게 발각돼 로마 밖으로 도주한 바 있었다.
그러자 렌툴루스와 케테구스가 카틸리나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계속 음모를 꾸미다 체포당했다. 렌툴루스와 케테구스의 처벌 수위와 방법을 놓고 원로원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카이사르는 두 국사범을 금고형에 처하는 걸로 충분하다며 그 이유와 근거를 논리정연하게 주장해 이를 거의 관철시킬 뻔했다. 카토와 카툴루스가 즉각 반격에 나서 대세를 다시 중형 쪽으로 돌려놨고, 렌툴루스와 케테구스는 결국 사형 집행인에게 신병이 인도되었다.
원로원이 산회하자 의원들은 삼삼오오 회의장을 나섰다. 이때 키케로를 추종하는 청년들이 칼을 뽑아들고 카이사르에게 다가왔다. 이들은 키케로가 무언의 몸짓으로 신호를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키케로는 끝내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는 카이사르를 처치한 다음의 후폭풍이 두려웠다.
-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3)
카이사르의 사전에 ‘후보 단일화’란 없었다
당시 로마에는 두 개의 정파가 존재했다. 하나는 집권여당격인 술라의 파벌로 이들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왔다. 반면에 야당 역할을 해야 할 마리우스 세력은 술라파의 위세에 눌려서 춥고 배고픈 재야 신세를 면하지 못해온 터였다. 카이사르는 힘없이 사방에 뿔뿔이 흩어진 마리우스 추종자들을 일거에 일으켜 세우는 대담한 정치적 이벤트를 기획했다. 야음을 틈타 카피톨리움 위에 마리우스의 실물을 본뜬 조형물들을 세워놓은 것이다.
현직 조영관의 이와 같은 도발적 행위는 지하에 잠적해 있던 마리우스파를 단숨에 지상으로 불러내 조직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무기력하게 고립분산된 재야세력을 강력하고 결집된 야당으로 순식간에 탈바꿈시켰다. 여당의 아성인 원로원은 경악했고, 민중파의 본거지인 길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로 흘러넘쳤다. 아직은 원내 소수파 지위에 지나지 않던 친 카이사르 성향의 원로원 의원들은 한껏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사르가 머잖아 모든 반대파를 제압하고 로마에서 제일가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카이사르의 인기가 신기루가 아니었음은 많은 정치인들이 노리고 있던 자리인 최고 제사장직 선거에서 명징하게 입증되었다. 이사우리쿠스와 카툴루스, 그리고 카이사르 세 사람이 출마한 이 선거에서 카이사르는 카툴루스 캠프의 은밀한 후보단일화 제안을 일축하고 최선을 다해 완주한 결과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극적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사전에 현대 한국정치에서 난무하곤 하는 드롭(Drop), 곧 중도사퇴란 없었다.
투표일 아침, 카이사르는 모친이 자식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들을 배웅하자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안 돼봤자 귀양살이밖에 더 하겠습니까”라며 결기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카이사르가 거둔 뜻밖의 승리에 보수파들은 당황해하며 키케로를 탓했다. 키케로가 카이사르를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탓이었다. 그 절호의 기회는 카틸리나 사건 당시 찾아왔었다. 카틸리나는 기존의 헌정체제를 전복할 쿠데타를 획책하다가 키케로에게 발각돼 로마 밖으로 도주한 바 있었다.
그러자 렌툴루스와 케테구스가 카틸리나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계속 음모를 꾸미다 체포당했다. 렌툴루스와 케테구스의 처벌 수위와 방법을 놓고 원로원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카이사르는 두 국사범을 금고형에 처하는 걸로 충분하다며 그 이유와 근거를 논리정연하게 주장해 이를 거의 관철시킬 뻔했다. 카토와 카툴루스가 즉각 반격에 나서 대세를 다시 중형 쪽으로 돌려놨고, 렌툴루스와 케테구스는 결국 사형 집행인에게 신병이 인도되었다.
원로원이 산회하자 의원들은 삼삼오오 회의장을 나섰다. 이때 키케로를 추종하는 청년들이 칼을 뽑아들고 카이사르에게 다가왔다. 이들은 키케로가 무언의 몸짓으로 신호를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키케로는 끝내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는 카이사르를 처치한 다음의 후폭풍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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