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것을 체감하는 기준은 하나가 아니다.
피부로 느끼는게 다가 아니다.
나로선 날이 따뜻해도 야구가 없으면 봄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새 오키나와 리그가 시작됐다.
기특하게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줬다.
야구, 봄, 그리고 귀갓길에 임의재생된 어느 노래ㅡ.
고등학교때 오랜 짝사랑 끝에 짤막하게 만났던
어느 여자아이를 떠올려버리고 절망한 내가 있다.
그녀를 만난 그 때가 인생에 찾아온 짤막한 봄이었고
그녀와의 연애가 여름이었으며 헤어짐이 가을,
그리고 그 이후로 내 인생은 줄곧 겨울이었다.
짤막한 인생에 어찌 될 줄 알고 함부로 말하냐 싶지만
나는 인생의 4계절은 한번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땐 몰랐지만 그 이후 서서히 살아가며 깨달았다.
그 짧았던 나날이 사실은 다시 오지 않을 봄이었음을.
그 이후론 누구도 날 좋아해주지도 않았고,
나 역시 그때만큼 누군가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야구에 대해서도, 그때만큼 야구에 미쳐살지 않는다.
야구에 대해 나에게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까.
사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도 그 시절 좋아했던 노래들을 들으면 감상에 젖어
속으로는 실컷 울어버리고 그때를 목놓아 부르짖는다.
왜 붙잡지 않았느냐 하면 그땐 붙잡지 않아야 한다고
내 미래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닐거라고
나를 차던 그녀의 생각도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였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고서야 깨달은 것이었고
후회해봐야 너무 많은 세월을 지나버린 것이었다.
사실 그때도 “앞으로 인생에 겨울만이 남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지만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잘된 일이 있어도 겉보기에만 좋아보일 뿐인 일이었다.
말하자면 겉껍질만 멀쩡히 남아있을 뿐이었다.
마치 핵겨울과 같다. 10년 전 겨울 내 인생엔 핵이 터져
그 이후로 영원히 걷히지 않는 핵겨울에 들어가 버리곤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던 것.
그렇게 회복하지 못한채 학생 신분을 벗고 나니
이젠 방사능 밭에서 방독면마저 벗어버린 기분이다
정말 무방비로 세상에 내던져지니 연애는 더 멀어진다.
이젠 정말 거의 없었던 마음조차 비어가는 기분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마음이 동하질 않으니...
슬픔을 주는 글이네요.
핵겨울이라 슬프고, 작성된지 며칠이 지났는데 제가 첫 보팅 주자라는게 또 안타깝고.. (일단 사람들이 들어오게 하는 데에는 태그의 역할이 큰 걸까요?)
핵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이 피어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생명체의 제1 본능은 자손 번식이라는 점...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