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는 아일랜드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사실이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1800년대 후반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20세기 초반이 되자, 상황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글은 아이리시 위스키가 어떻게 부흥했다가 몰락했으며, 다시 부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0년 동안 아이리시 위스키는 확률을 무시하고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세계의 위스키로 복귀했다.
먼저 소위 이 "생명의 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보자.
"생명의 물"을 찾아서
스코틀랜드와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던 12세기, "위스키"를 처음 세상에 소개한 것은 아일랜드인이었다. 위스키란 용어도 게일어 "uisce beatha"에서 비롯된 것으로, 글자 그대로 하면 "생명의 물(Water of Life)"이란 뜻이다.
이다.
그렇다면 위스키는 어디서 처음 만들었을까? 아마, 수도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서기 1000년 경 지중해를 여행하던 수사들이 증류 기술(술이 아니라 향수를 만드는데 쓰이던)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후 똑똑한 사람(감히 말하지만 천재다)이 나타나 이 기술로 술을 만들어 봤을 것이다. 그렇게 위스키가 탄생했던 모양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위스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거의 닮지 않은 모습으로 태어났다. "Uisce beatha"는 숙성을 거치지 않았고, 민트, 백리향 및 아니스 같은 향기로운 허브로 향이 났다. 오리지널 "Uisce beatha"의 맛이 궁금하다면,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들어진 위스키 리큐어 아이리시 미스트(Irish Mist)를 마셔보기 바란다.
1608년 처음 아이리시 위스키 증류 허가가 발행되었고, 18세기가 되자, 아이리시 위스키의 수요가 급증했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1800년대 초 영국에서 가장 큰 증류주 시장이 되었다. 1832년 더블린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5대 증류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1800 년대 후반이 되자, 아이리시 위스키의 명성이 해외로까지 크게 퍼졌고, 스카치 위스보다 5배나 많이 팔려나갔다. 아이리시 "단식 증류" 위스키의 인기는 한 마디로 대단했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자, 아이리시 위스키를 대신해 스카치 위스키가 세계의 위스키로 자리 잡았고, 더블린에 있던 전설적인 증류소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아이리시 위스키의 몰락
아이리시 위스키의 몰락을 초래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코페이 증류기(Coffey still; 연속식 증류기)"의 발명과 아일랜드 증류소들이 이를 도입하지 않은 요인이 가장 심각했다.
이니어스 코페이(Aeneas Coffey)라는 아일랜드 세무 공무원이 1832년 발명 한 이 증류기는 하루 종일 연속으로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훨씬 더 효율적이고, 연료비도 적게 들며, 기존 아이리시 "단식 증류기"보다 저렴하게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었다.
(코페이 증류기)
코페이 증류기가 더 효율적이었던 맞았지만, 위스키의 풍미를 좌우했던 여러 성분들을 날려버렸다. 아이리시 증류소들이 최초로 코페이 증류기를 시운전해 봤지만, 맛이 떨어지는 위스키를 만들 수 없다면서, 이 증류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코페이 증류기로 만든 훨씬 부드러운 맛의 위스키가 점점 더 영국 술꾼들의 인기를 끌게 되었다. 특히 이전의 전통 방식으로 제조된 위스키와 섞어 마시면 맛이 더 좋다는 얘기가 퍼졌다.
사람들의 취향과 입맛이 변하면서, 이 새로운 "블렌디드" 위스키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도, 아일랜드 증류소들은 그런 위스키는 만들 수 없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했고, 일부에서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금지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사람들의 변한 입맛에 블렌디드 위스키가 딱 맞아떨어졌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아일랜드 증류소들 또 하나의 악재가 들이닥쳤다. 바로 아일랜드의 독립과 이어진 영국과의 전쟁이었다.
1987년까지만 해도 아일랜드에서 영업 중인 증류소는 28곳에 달했지만, 1972년이 되자 단 2곳으로 줄었다. 아이리시 위스키의 황금기를 함께한 증류소로 마지막 남은 곳 "올드 부시밀스(Old Bushmills)"가 그중 하나였고, 나머지 하나는 세 명의 아일랜드 증류 기술자 존 제임슨, 파워스 및 코크가 자기 증류소를 폐쇄하고 “아이리시 디스틸러스(Irish Distillers)"라는 이름으로 합병해 새로 만든 "뉴 미들턴 디스틸러리(New Mildeton Distillery)"였다.
화려한 부활
1970년대 아이리시 위스키가 어느 정도까지 몰락했는지 이해하려면 통계를 살펴봐야 한다. 그 10년 동안 아이리시 위스키의 판매량은 단 40만~50만 상자에 불과했다. 뭔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900년경만 해도 1년에 1,200만 상자가 판매되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스카치 위스키에게 권력을 넘겨준 아이리시 위스키는 그저 고대의 유물처럼 보였고, 다시 살아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대대적인 아이리시 위스키의 부활은 근래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이야기 중 하나였다.
1980년대 후반 아이리시 위스키의 부활에 일조했던 두 가지 이정표가 있었다. 하나는 1987년 쿨리 디스틸러리(Cooley Distillery)의 설립으로, 아일랜드 위스키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쿨레이 디스틸러리)
다른 하나는 1988년 페르노리카가 "아이리시 디스틸러스"를 인수한 것이다. 이후 페르노리카는 전 세계에 아이리시 위스키를 알리는데 시간과 노력을 아까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 페르노리카의 노력 덕분에 아이리시 화려한 부활을 경험했다. 1972년만 해도 아일랜드 증류소가 2곳 밖에 없었지만, 현재 18곳으로 늘었고, 16곳이 건설 중이다.
(페르노리카의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
2016년 아이리시 위스키는 870만 상자가 판매되었고, 2020년이 되면 1,200만 상자를 넘어서 1900년의 역사적인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아이리시 위스키의 판매량은 매년 약 20%의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증류주가 되었다.
자료 출처: The Modern Day Man, "Whiskies of the World: The History of Irish Whisky"
오늘은 큐레이션 데이 이벤트 선정 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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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기호와 효율성을 모두 따져야 하는 주류분야의 특성이 잘 녹아있는 글입니다^^ pius.pius님께서는 기호와 효율성에서 어떤 선택이 기업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궁금해서 여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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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을 지켜나가느냐, 허물고 빌딩을 올리느냐" 문제 같네요.
뻔한 대답 같지만, 고유한 맛을 지켜나가되, 신기술을 도입해서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어떤 가요?
동의합니다^^ 주류 산업에서 둘 중 선택하라는건 도태되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pius.pius님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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