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마스터하고 교향곡을 작곡한 천재. 하이든은 그의 죽음을 두고 “100년 안에는 모차르트와 같은 재능을 보지 못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음악가들이 보기에도 넘사벽의 재능을 자랑했던 모차르트, 하지만 그가 죽을 무렵, 술과 도박에 찌들어, 빚만 잔뜩 지고 세상을 떠난 스튜핏-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이런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모차르트의 씀씀이가 헤펐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보통의 음악가들보다 몇 배의 수입을 얻었고, 또 돈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그에게 어떤 이미지를 덧칠하건 간에, 적어도 모차르트는 음악 앞에서는 한없이 성실했고, 그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했다.
그에게는 음악으로 돈을 벌고 유명해지겠다는 세속적인 욕망과, 언제나 최고의 음악을 작곡하겠다는 장인 정신이 공존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작곡하고 싶다고 작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작곡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작곡 의뢰를 받아야 한다.
가장 많은 작곡 의뢰를 받고, 가장 성대한 규모의 작곡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그가 살던 시대는 18세기, 당연히 왕실이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빈에 정착한 후, 황제의 환심을 사서 궁정 음악가 정규직에 취직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황제의 낮은 안목과 모차르트를 시기한 이탈리아 음악가들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다.
최고의 기술과 정열을 쏟아부어 작곡한 오페라가 빈에서 연달아 실패하면서 모차르트의 자신감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열릴 듯 열릴 듯 열리지 않던 기회가 마침내 찾아오지만, 모차르트의 생명의 불꽃은 서서히 사그라드는데...
왕실 음악가 정규직을 향한 모차르트의 노오오오력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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