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사후에 대한 나의 이론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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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나는 가끔씩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령 '나는 누구일까?', '인생은 무엇일까?'와 같은 주제는 한가한 오후, 시간 잡아먹기로 딱이다. 이런 지극히 철학적인 사색, 혹은 사춘기적 발상의 끝은 보통 '에라 모르겠다!'이지만 아주 가끔은 나름의 어떤 이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질문 중, 내가 자아와 사후에 대해 내린 모자란 결론이 하나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무겁게 묵혀둔 생각을, 우습게 들릴지 모르는 망상을 글로 정리해볼까 한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을 수학중인 대학원생이다. XY염색체를 받았고 작은 키지만 왜소해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교적인 성격이지만 여느 수컷들과 구별되게 종종 감성적인 면이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편이며, 방향 제시에 능하지만 실행력과 인내력은 조금 부족하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나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한다. 나의 유일성은 내 이름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직업으로도, 성격으로도 힘들다. 나를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굳이 따지자면 DNA로는 가능해보이지만 SF영화에 등장하는 기술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는 요즈음, DNA도 영원히 믿을 수는 없어 보인다.

전래동화 <들쥐와 손톱>처럼 어느날 나와 외모가 똑같고 나의 비밀까지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내 행세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흠... 일단 동화의 내용처럼 고양이부터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정의하는 것은 도통 어렵다. 그래서 뜬금없는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나는 그냥 '나'다. 거울 없이 내 얼굴을 마주할 수 없듯, 내가 혼자서 스스로를 정의할 수는 없다. 대신, 내가 나에 대해 사유할 때에야 나의 존재를 자각할 수는 있다는 이 결론은 데카르트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나는

대학원에서 인공신경망을 공부하고 있다. 인공신경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들의 상호작용을 컴퓨터에 구현해서 모방하는 것이다. 이 기술의 발전으로 알파고가 탄생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컴퓨터로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려 할 때 꼬리가 긴지 짧은지, 귀의 모양은 어떤지 등의 규칙으로 분류하려 했다면, 인공신경망에서는 충분한 수의 개와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고 알아서 각 특징을 학습하게 하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인공신경망으로 만든 모델들은 훨씬 더 사람처럼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처럼 바둑을 두고, 사람처럼 이미지를 분석하고, 사람처럼 문장을 이해한다. 그래서 왠지 언젠가 진정 사고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면 이 기술이 토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이미지를 분석할 때 쓰는 인공신경망 구조와 텍스트를 이해할 때 쓰는 구조가 조금씩은 다르긴 하지만, 사람도 마찬가지로 각 기능이 뇌의 다른 부분에서 일어나지 않는가? 컴퓨터 속에서도 사람의 뇌 구조를 본따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사람처럼 기능한다.

역시 생각이라는 것은 가슴 속 영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뇌 속 1000억개 뉴런과 100조개의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전기 상호작용이라 말하는 것이 새삼 더 신빙성있게 다가온다.

갑자기 인공신경망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곳에서 내 논리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일종이다. 인간의 뇌 구조는 모두 같다. 뉴런과 뉴런 사이에 연결된 네트워크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 자아가 시냅스 사이를 지나다니는 전기, 화학적 상호작용이라고 말했는데 이 현상은 당연하게도, 내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뇌 속에서는 끊임없는 일련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고, 그것들은 어떤 신비한 알고리즘을 통해 해당 개체의 자아로 작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자아라는 단어가 '물리적으로 표현되거나 표현되지 않는 모든 생각들'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됨에 주의해보자.

사람의 성격을 생각이 이뤄지는 어떤 알고리즘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거리의 사람들을 뇌 작용과 관련이 있을 법한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다음은 여러가지 성격 분류모델 중 한가지이다.

Costa&McCrae 는 OCEAN으로 불리는 성격 특성 요소가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 상상력, 호기심, 모험심, 예술적 감각 등으로 보수주의에 반대하는 성향
    개인의 심리 및 경험의 다양성과 관련된 것으로, 지능, 상상력, 고정관념의 타파, 심미적인 것에 대한 관심, 다양성에 대한 욕구, 품위 등과 관련된 특질을 포함

  • 성실성(Conscientiousness) -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성향
    과제 및 목적 지향성을 촉진하는 속성과 관련된 것으로, 심사숙고, 규준이나 규칙의 준수, 계획 세우기, 조직화, 과제의 준비 등과 같은 특질을 포함

  • 외향성(Extraversion) - 다른 사람과의 사교, 자극과 활력을 추구하는 성향
    사회와 현실 세계에 대해 의욕적으로 접근하는 속성과 관련된 것으로, 사회성, 활동성, 적극성과 같은 특질을 포함

  • 친화성(Agreeableness) - 타인에게 반항적이지 않은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성향
    사회적 적응성과 타인에 대한 공동체적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타심, 애정, 신뢰, 배려, 겸손 등과 같은 특질을 포함

  • 신경성(Neuroticism) - 분노, 우울함, 불안감과 같은 불쾌한 정서를 쉽게 느끼는 성향
    걱정, 부정적 감정 등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과 관계된 것으로, 걱정, 두려움, 슬픔, 긴장 등과 같은 특질을 포함(정서적 안정성은 정서적 불안정성과 반대되는 특징)

--출처 : 위키백과 (OCEAN 모델)

OCEAN 모델에서는 각 요인들이 생물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즉 개인의 유전(생물학적 기반)에 의해서 다섯가지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고, 특정 요인의 더 강하고 약한 것은 이미 유전적으로 정해졌지만 심리적 발달을 하면서 개인적 차이가 생긴다고 본다. 꼭 OCEAN 모델이 아니더라도 어찌되었건 우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보통 분류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모든 인간종은 같은 뇌구조를 가진다. 거리의 사람들은 서로 독립적이고 전혀 다른 사고를 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은 각 개체의 뇌가 결코 중복되지 않는 다양한 입력을 통해 학습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인간의 뇌는 유한한 종류의 사고 알고리즘을 가졌고, 외적으로 관찰되는 다양성은 그저 서로 다른 입력에 의해 도출되는 현상일 뿐이라는 거다.

물론 이 알고리즘은 시간과 독립적이지 못하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추가되는 경험들이 나의 자아 발현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자아의 죽음

내 자아 이론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사후 세계까지 확장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불교에서는 윤회를 주장하고 혹자는 무(無)나 공허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내 자아 이론에 근거하여 나의 뇌가 활동을 멈추는 순간에 나와 뇌구조가 같은 다른 개체로 존재가 이양될 거라 생각한다.

이 주장에는 쉽게 공감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존재를 논함에 있어 '기억'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부정하기 때문이다. 통용되는 개념과 달리 나의 존재가 그저 나의 사고 알고리즘라고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컴퓨터가 종료되면서 기존 작업에 쓰였던 데이터와 결과물이 삭제되는 것처럼 그렇게 나의 생은 사라지지만 내가 쓰고 있던 사고 알고리즘 프로그램이 탑재된 어떤 다른 컴퓨터에서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고 작용이 계속될 것이란 게 나의 이론이다.

꽤 열심히 글로 옮겼는데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할지 모르겠다. 스팀잇에 오랜만에 올리는 글이 무거운 주제라 죄송스럽다. 그래도 자아와 사후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기에 이렇게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음이 즐겁다.

공감여부와 무관하게,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성취하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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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오랜만이예요 용욱님~
흥미로운 관찰과 분석이네요. 무겁고 어렵지만, 분명 재미도 있고 진지한 주제이고요.
'뇌'와 생각에 대해 '과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어 좋은데요. 포스팅 감사해요~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좀 더 해주시면 열심히 읽어볼게요^^;

오랜만에 조금 이상한 글로 찾아뵙게 되어 송구스럽네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수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