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on Fire, 2019)

in #movie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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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첫 극장 영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된 마리안느.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인 그녀는 귀족 아가씨의 초상화 의뢰를 받게 된다. 결혼을 앞둔 아가씨의 배우자에게 보낼 초상화를 그리게 된 마리안느.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으니, 자신이 화가라는 사실을 숨기고 몰래 아가씨를 관찰하며 초상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조건이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 흥미를 느끼는 마리안느. 아가씨의 산책 친구로서 아가씨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언니의 죽음으로 수녀원에서 나오게 된 엘로이즈. 언니 대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그녀. 달리기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녀 앞에 어느날 산책 친구가 나타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배경은 과거 17세기이다. 여성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장애물로 여겨졌던 시대.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제한적인 마리안느와 귀족 가문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엘로이즈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신을 억압하던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 순간, 원하던 평등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된 순간, 그들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계급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솔직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끝난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도 극단적으로 그려진 것은 아닌지 괜한 불만이 들었었다. 그 놈의 사랑. '아니, 왜 툭하면 사랑이야?' 의지할 수 있는 사이로서, 좋은 우정으로서 정녕 그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의심했던 그녀들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립된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비현실성에 불만을 품었었는데, 어쩌면 이는 메타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성별의 차이가 주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서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여성들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섬'. 만일 섬의 의미가 자유라 한다면, 그들이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은 순간의 연민과 동정이라기엔 너무나도 뜨거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씬 연출이 무척이나 훌륭했다 생각한다. 모든 씬에 긴장감이 넘쳤다. 감독은 왜 그토록 모든 씬에 긴장감을 녹여냈던 것일까? 혹 그 긴장감은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함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몰입에는 무척 도움이 되었다. 하나의 씬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인물의 표정, 행동, 그리고 대사 모든 부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불어 영화는 특정 순간에만 배경 음악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음악을 사랑하는 두 주인공과는 상이한 연출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예술적인 자원을 마음껏 즐길 수 없었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 여성들의 비극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엔 그 내면의 깊이가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본 이후, 영화의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영화. 어제와 오늘의 감상이 다른 영화. 2020년을 시작하는 첫 극장 영화로서, 무척 훌륭한 스타트를 선사해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