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사내의 귀환
사내는 아오모리의 한 고즈넉한 카페에 앉아 있다. 이곳은 마치 동화 속 세계를 구현한 듯 아기자기한 옛 장난감들과 할아버지의 시계를 연상시키는 각종 벽시계, 괘종시계들이 사방을 채우고 있다. 사내는 오랜만에 스타벅스를 벗어나 현지의 정서가 그대로 담긴 올드 카페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들고 있다.
‘아..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이 내부 공기의 밀도가 나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듯해.’
12월의 첫날, 때마침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직 기온이 영하권까지 떨어지지 않아 쌓이지 않고 바닥에 닿은 즉시 녹아내리는 눈이었지만 사내는 그것이 오히려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눈은 볼 때만 좋고 거리를 오가는 데 불편하게 할 뿐이니 말이다.
‘이런 눈이 내리는 날, 이런 분위기의 카페를 만난 건 행운이야. 난 역시 행운의 사나이야.’
사내는 따뜻해져 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메뉴를 가져다주는 점원은 오늘 일을 처음 시작한 알바생인 듯 주인장으로 보이는 할머니의 케어를 받고 있었다. 눈빛도 따스하고 목소리에도 정감이 넘치는 주인장 할머니는 알바생을 마치 손녀를 대하듯 친절하게 이것저것 보살피고 있었다. 어설플 수밖에 없는 초보 알바생의 몸짓은 긴장되어 있었으나 그녀를 이끄는 할머니의 손길은 매우 세심하고 따뜻했다. 사내는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쓰미마셍.. 잉글리쉬 메뉴??’
사내는 온통 일본어로 쓰여진 메뉴를 보다가 혹 영어 메뉴가 있는지 알바생에게 물었다. 사내는 질문을 하면서도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가지는 긴장감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주문을 해도 긴장할 텐데, 심지어 영어 메뉴를 달라는 낯선 외국인의 요청에 초보 알바생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를 생각하니 큰 폐를 끼치는 심정이었다.
그때 친절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듯 보이는 주인장 할머니가 다시 등장하였다. 주인장 할머니는 매우 능숙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당황해서 사내가 무엇을 요청하는지 모르고 있는 알바생을 부드럽게 리드하는 것이었다.
‘하이! 잉글리쉬 메뉴 OK!’
조금 떨어져 알바생의 주문과정을 지켜보던 주인장 할머니는 당황해하는 알바생의 등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잠시 혼란의 상황이 전개되려는 주문의 현장을 빠르게 정리하였다. 그것은 마치 매우 오랜 세월을 숙련해 온 초밥 마스터의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손놀림을 연상시키는 개입이었다.
사내는 감탄하며 다시 편안해진 상황에 만족스러워졌다. 잉글리쉬 메뉴는 친절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사내는 원하는 커피와 케잌 한 조각을 주문할 수 있었다. 사내는 쏟아져 내리는 창밖 하얀 눈을 바라보며 마음에 감동을 안겨 준 방금 전의 상황에 깊이 매료되었다. 당황한 초보 인간과 능숙한 원로의 아름다운 하모니, 인간과 인간의 아름다운 연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류의 진화..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처럼 사내의 생각이 하얗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각박해지고 불친절해지고 있어. 그러려고 문명을 발달시킨 것은 아닐 텐데 말이야. 아니 어쩌면 발전해 온 것은 문명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일지 몰라. 탐욕은 서로를 적으로 만들지. 진정한 문명이라면 서로를 친구로, 이웃으로, 동료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타인으로 말미암은 거야. 왜 그런 詩도 있잖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무인도에서 혼자 존재하는 인간은 그냥 물질 덩어리일 뿐이야. ‘호모 사피엔스’라면 마땅히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있어야 해.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구. 그러니 호모 사피엔스적 문명의 발전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신과 타자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이 발전해 갈 수 있는 거야. 그러니 타자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야. 나를 나이게 하고 또한 우리이게 만드는 타자야말로 진정한 자아의 나머지이지. 하지만 우리는 점점 소외되고 있어. 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욕심의 과잉은 사람을 소외되게 만들지. 그렇게 모두를 가진 다음에는 거대한 집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야. 그럼 뭐해? 모두들 기계처럼 복종하고 그저 나를 ATM 취급 할 뿐인데. 그런 관계들 속에서 어떻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겠어?’
_ written by 교토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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