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도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마시는가?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스승은 아무 말도 없이 모래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바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제자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스승에게 차마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십수 년간 스승과 함께 해왔지만 오늘 같은 스승의 눈빛은 본 적이 없었다.
정적을 깬 것은 스승이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건넸다.
“외계인이 있다고 믿느냐?”
“네? 외계인이요?”
“그래, 외계인 말이다. 너는 외계인이 있다고 믿느냐?”
“아 네.. 음.. 저는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곧 만날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곧 만난다.. 어디서 만날 건데?”
“글쎄요. 외계인이 저를 찾아오겠지요. 저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그들이 저를 찾아와야겠지요.”
“너는 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그들은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데 말이다.”
“그것은.. 그러니까, 저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그들은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테니.. 아니 그래야 저를 찾아올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너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그들은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결국 네가 기다리는 존재는 너보다 뛰어난 존재이구나. 너는 그러니까, 외계인이란 너보다 월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아.. 그것은 그러니까.. 그동안 영화나 소설이나, 인간의 상상 속 외계인이란, 늘 지구를 침공하거나 더 앞선 문명과 과학기술로 무장한, 그런 존재로 그려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반대로 생각해 보게나. 인류는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별에서 선사시대의 유인원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아, 그렇다면.. 음.. 저는 그냥 그들을 지켜볼 것 같습니다. 유인원이라면 말도 안 통할 텐데.. 좀 용기를 낸다면 대화나 생활을 같이 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삶에 간섭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래, 우리보다 앞선 문명의 외계인들이라면 그들도 우리를 보고 마찬가지이겠지? 그렇지 않겠니?”
“네.. 말씀을 듣고 보니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하네요. 하지만 자원 약탈이나, 아니면 SF 소설에 흔하게 등장하는 자신의 별이 위기에 빠져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선 외계인들이라면 인류에게 적대적이지 않을까요? 그런 목적으로 지구를 방문하는 외계인들이라면..”
“그렇다면 이미 우리는 침공을 당했겠지. 아니 앞으로도 그런 목적으로 지구를 방문하는 외계인들이 있다면, 어차피 우주공간을 거슬러 올만큼 앞선 존재들일 테니, 인류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그런 질문은 어차피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죽거나 노예가 되거나 할 뿐이니 말이야.”
“음.. 그렇군요. 그렇다면 침공의 목적이 아닌 외계인들은 그들이 우리보다 앞선 문명의 존재일수록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우리랑 대화를 하고 싶지는 않을까요? 저는 우리보다 미개한 외계인이라 할지라도 뭔가 소통을 하고 싶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도 우리보다 미개한 외계인과 소통을 한다면서 휴대폰을 막 들이대거나 하지는 않지 않겠나? 게다가 복장이나 행색, 외모가 현저히 다르면 오히려 저들이 위협적으로 느낄 텐데..”
“아.. 그렇군요. 소통을 하려고 해도 가능한 그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태도나 행색, 가능하다면 그들과 같은 복장이나 모습을 하려고 할 것 같네요. 음.. 그렇다면 외계인은 어쩌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한다면 말이죠.”
“그럴지도 모르지. 적대적이거나 침공의 목적이 아니라면, 그들은 이미 지구에 와 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우리 곁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누군가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는 왜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네?”
스승은 질문을 하고는 잠시 고개를 돌려 땅을 훑어보고 있었다. 모래 언덕에 이따금 박힌 작은 조약돌들은 스승의 눈빛과 어우러져 여러 개의 눈처럼 보였다. 제자는 스승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대화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느냐는 스승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침공의 목적이 아니라면 외계인이 자신을 모습을 함부로 드러낼 리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스승은 다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제자는 긴장이 되었다. 스승의 의중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난해해졌다. 모래 속에서 반짝이던 조약돌은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것 같이 보였다.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스승님 말씀은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저의 믿음의 이유를 물으시는 거죠?”
“무엇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하는 것은 모두 자네의 자유이지. 그리고 믿음에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것도 아닐 테고. 다만 왜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가 궁금할 뿐이네.”
“글쎄요. 우주가 이렇게 넓은 데 우리와 같은 존재가 또 없으리란 법도 없고, 또 그동안 인류의 상상이 일관되게 외계인에 대해 그려 왔으니, 그것에는 어떤 무의식적 근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자네는 외계인을 만나 본 적이 있나?”
“아니, 스승님. 그렇다면 제가 봤다고 얘기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본 적이 없으니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네. 자네는 외계인을 이미 보았네.”
“네? 외계인을 제가 봤다구요?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태어나서 외계인은커녕 귀신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말일세. 귀신도 보지 못했는데 어찌 외계인을 보겠나. 그러나 자네가 그러한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보았기 때문일세.”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보지 않을 것을 상상할 수가 없네. 개념 자체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야. 새로운 상상이라고 하는 것들도 이전에 잠재된, 그러니까 이미 본 이미지들이 연동되어 일어나는 것이지. 그러니 인류는 보지 않을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외계인을 보았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 드러나는 방식은 우리가 본 여러 이미지들 중 하나이겠지. 어떤 이들에게는 파충류로 보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고깔머리를 한 괴생명체로 드러나기도 하지. 하지만 그 모든 것들 중 어떤 것들이 실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든 이미 인류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던 이미지일 뿐이라네.”
“그러면 외계인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냥 이미지입니까?”
“자네 눈에는 내가 뭘로 보이나?”
“예? 사람이시..잖아요..?”
“그것은 이미지인가? 실체인가?”
“그렇게 물으시면.. 제가 어찌 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실체에 대해서도 그것의 존재 여부를 확답할 수가 없네. 시간은 흐르고 공간조차 멈추어 있는 게 아니란 말일세. 그러니 시공간의 흐름은 물같이, 바람같이, 그 존재를 붙들 수 없는 것이야. 물리적으로만 보더라도 어디 인간이 고정된 물체인가? 그것은 세포들의 집합이며, 미시단위로 파고 들어가면 엄청난 공간들의 연속이지. 그러니 인간은 이미지인가? 실체인가? 외계인의 존재도 마찬가지일세.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 역시 인류의 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새로운 무엇일 뿐이지. 그러니 우리는 이미 그들을 본 걸세.”
“그렇게 말씀하시면 세상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인간의 의지는 다 무엇이며, 우리가 만지고 느끼는 감각은 다 무엇입니까? 스승님 같은 분들의 그런 말씀은, 무례하지만 때론 너무 실제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실제라.. 그렇다면 좀 더 실제적인 얘기를 해 보지. 자네는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서 믿는다고 했네. 그러면 외계인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났나?”
“그건 책에서 읽고, 영화에서 보고, 사람들에게서 들으면서 생겨났겠지요.”
“그러면 갓난 아이, 아니 이제 말을 떼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외계인을 어떻게 설명할 텐가?”
“그건 뭐, 일단.. 음.. 어린아이들이라면.. 설명하기가 어렵겠네요. 동식물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겠네요. 우주니, 외계니, 인류니, 생명체니 하는 개념들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설명이 불가능하겠네요.”
“그렇지. 결국 자네의 외계인에 대한 인식은, 이 인류문명이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로 습득되고 점층적으로 쌓아올려진 지식위에서 존재하는 걸세. 그러니 그 체계가 전혀 다르다면 아예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 될 수도 있지. 그러니 그것은 실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야. 설사 정작 눈앞에 외계인이 떡하니 서 있다고 해도 개념이 없으면, 각자의 개념에 따라 신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아니면 괴물로 인식한 채 공격하거나 방어하려 들겠지. 그러니 우리는 이미 외계인을 만난 걸세. 그것은 개념 속에서 존재하는 거니까.”
“음.. 그러니까, 스승님 말씀대로면 개념이 만들어 낸 실존이라는 말씀이네요. 아니 그러니까 실존하는 무엇도, 개념에 따라 존재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외계인을 만났을 수도 있겠네요. 다만 개념이 아직 없거나, 그것을 외계인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지 못해서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후후 그럴까?”
“네?”
_ written by 교토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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