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에는 목소리 높여 싸우는 사람이 없다면서요? 라다크 사람들 싸우는 거 한번 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예요!”
“에이. 사람 사는 곳에 어떻게 싸움이 없겠어요? 저희는 여기 있으면서 라다크 사람들 싸우는 것 숱하게 보았는걸요.”
카페를 찾은 한 한국인 여행자는 자신이 품고 있던 환상이 나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깨져버린 것이 억울한 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아마도 여행 전에 헬레나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읽고 라다크에 대한 이런저런 이미지들을 마음속에 품은 채 라다크를 찾은 듯했다. 헬레나 호지는 자신의 책에서 라다크 사람들의 심성에 대해 설명하며 ‘전통적인’ 라다크에서는 어떤 종류든 공격은 예외적일 만큼 드물다고 썼다. [오래된 미래]가 라다크를 찾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만 해도 처음 라다크를 찾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이 책을 찾아 읽었으니 말이다. [오래된 미래]의 구절구절은 나를 호되게 긴장시키기도 했다.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이 벼랑 끝에 매달린 인류 공동체를 구원할 유일한 해답이라는 그녀의 글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가 경험한 라다크를 통해서 나의 경험을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처음 라다크 사람들을 보고 나는 그들이 우리와는 ‘다르게’ 웃는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이 가진 웃음과는 다르게 라다크 사람들의 그것에는 목적이나 용도가 없다고 말이다. 라다크에 대한 대단한 호기심이 나를 뒤흔들었다. 책이든, 영화든, 인터넷이든 닥치는 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라다크 사람들은 갖고 있지만,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은 왜 우리보다 더 행복해보이는 것인지. 나는 다른 그림 찾기 놀이를 하는 사람처럼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발견할 때마다 전율했다. 라다크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며,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들 했다. 또 그들은 부처의 말씀을 생에서 실천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없어 늘 여유롭고 친절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라다크에 덧씌워진 ‘착한 이미지들’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우연히 라다크에서 태어나 자란 티베트 친구들과 라다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부모가 티베트에서 망명해 와 라다크에 자리 잡은 이후, 라다크에서 태어나고, 라다크의 학교에서 배우며 자란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라다크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 하나둘 늘어놨는데 가만히 듣던 중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라다크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착하다고 느꼈어?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정말 싫어. 라다크 사회도 정말 질릴 만큼 싫어.”
의외였다.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고 불릴 만큼 티베트와 비슷한 맥락을 여러모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망명한 티베트 사람들이 라다크에 정착하는 것이 다른 지역에 비해 수월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라다크 사람들은 너무 거만해. 자신들의 땅에 얹혀살고 있는 우리들을 고깝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어찌 됐든 그들은 우리를 자신들 공동체의 일부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 나는 라다크 사람이고, 너는 티베트 사람이라고 나누어서 생각해버리지. 그리고 우리를 무시하는 일이 허다해. 학교 다닐 때는 똑같이 잘못해도 우리만 혼이 나기도 했어. 라다크 경찰들은 노골적으로 우리 티베트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기도 했고."
친구의 이야기 속에는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품은 자격지심도 어느 정도 묻어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없고, 늘 상냥하고 친절한 웃음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사랑을 느꼈던 내게 티베트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충격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느낌이었다면 너무 극성스러운 것일까? 이후로 나는 라다크가 가진 별명들을 하나씩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 지상낙원, 오래된 미래. 붙여진 별명처럼 라다크 사회는 평화로운가? 라다크 사람들의 삶은 여유로운가? 내가 사랑한 라다크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사람들이 작성해놓은 ‘라다크가 우리와 다른 점 열 가지’ 따위의 목록을 책에서, TV에서, 인터넷에서 보고, 그 안에서 취사 선택하여 느끼고, 사랑해온 것은 아닐까? 내가 ‘다르다’고 느껴왔던 것들은 다른 누군가가 ‘다르다’고 말해왔던 것들이 아닐까? 나는 진짜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떤 ‘다름’을 느낀 걸까?
라다크 사람들과 옥신각신하는 하루하루가 쌓여가면서 그들에게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 즈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라다크 사회의 곳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내가 속했던 세계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삶은 ‘여유’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치열했고, 그들의 사회에는 ‘평화’롭다고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갈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라다크 사회에는 ‘계급’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존재하고,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라는 그럴싸한 이름 안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라다크에는 티베트 불교 승려들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라다크 사람들이 농사만 짓고 사는 것도 아니며, 유목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니었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순박한 라다크 사람들'이라는 틀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주체가 라다크에 살고 있고, 지금의 라다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전통과 개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또래들이 있고, 실업에 허덕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라다크 지역은 인도 최대의 병영지대이며, 높은 임금 수준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발길이 시즌마다 끊이지 않는 지역이기도 했다. 덕분에 벌어지는 변화와 갈등, 폭력과 불평등 같은 것들이 라다크 사회 안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라다크 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이 오랫동안 감추어져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수요와 공급의 시장 법칙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라다크의 모습들만을 찾아보기에 바빴고, 라다크 사람들은 여행자들이 보고자 하는 라다크의 모습들을 열심히 만들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외부에서 몰려들어 각종 단체를 만들고 라다크를 자신들만의 이상향으로 남겨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기도 했다.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라다크 사회의 불안한 평온을 마주하는 것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내가 사랑한 라다크가 아니었다. 이곳을 다시 찾을 이유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왜 라다크를 선택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냥”이라고 대답해버리기에는 라다크에 대한 나의 애정이 너무 깊어 자존심이 상했다. 애증이었다. 라다크에 살기 위해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도 내가 사는 곳과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외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라다크 친구 중에도 라다크 사회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혼란과 낯섦을 느끼는 친구 초모가 있었다. 그녀는 18년 동안 외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2년째 라다크에서 지내고 있는데, 라다크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순수하거나 착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이 경험한 라다크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곤 했다. 주로 주변인들의 돈 문제, 이성 문제와 같은 사사로운 이야기들부터 좀 더 굵직하게는 라다크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나 종교 갈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폭력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2년을 라다크에서 쭉 지내보니 이제야 알 것 같아.”
“뭘 말이야?”
“라다크 사람들에 대해서.”
“무슨 뜻이야?”
“라다크 사람들은 모두 미친 것 같아.”
나는 초모가 왜 라다크 사람들을 ‘미쳤다’고까지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모가 라다크를 떠나 사는 동안 스스로 만들어놓은 라다크 사람에 대한 이미지와 그들의 진짜 사는 모습 사이에 너무나도 큰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초모, 그런 문제들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야.”
“하지만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이런 면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놀랐어. 내가 어렸을 때 라다크에 있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건 네가 어렸기 때문에 몰랐던 거야. 그리고 이곳은 변하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하고 있잖아.”
현지 사람들에게 정해진 이미지들을 부여하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다. 그 이미지들은 필연적으로 여행자들이 가진 삶의 모습들과는 달라야 한다. 그래야 여행의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볼 수 없는 것들,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여행의 명분’ 아니던가. 언젠가 라다크 사람들과 라다크 사회에 대해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짧은 평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친구가 “그럼 그곳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친구의 의문은 당연했다. ‘다르다’는 것은 그렇게나 결정적인 명분이었다. 어쩌면 여행자들이 만들어 놓은 ‘라다크’는 실제의 라다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일지도 모른다. 여행자들에게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 곰파의 승려들, 빨간 볼의 꼬마들은 라다크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들이겠지만,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승려, 담배를 피우는 라다크 여자들, 술을 마시고 목소리를 높여 싸워대는 라다크 청년들은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도 자신에게 부여된 이미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완전히 같지도 않다. 라다크 사람들은 어쩌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자들은 여행자대로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결국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여행지에서의 삶이 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너도, 나도 비슷한 모양으로 살고 있다는 것,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문제로 갈등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여행은 여행 그 이상이 된다. 라다크 사람들과 여행자들의 사이에 놓인 경계에서 한참을 머물며 여행지에 대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나쁜 습관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앞다투어 씌워놓은 착한 이미지들을 하나둘 벗기고 마주한 라다크는 오히려 익숙했다. 감동이나 전율을 주지는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꾸밈이 없어 좋았다. 내가 안경을 벗고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도 그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한결 편해진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대했다. 헬레나 호지가 [오래된 미래]를 통해 이야기한 것들을 허겁지겁 찾아보고자 했던 나는 그녀가 만들어준 안경을 끼고 라다크 사회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그들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변해가는 라다크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사라졌다.
그들은 오래된 미래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미래를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닫는 순간 라다크는 책 속에서, 인터넷 속에서, TV 속에서 빠져나와 진짜 내 곁에 왔다. 나는 그들이 우리와 ‘똑같이’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사진 찾다가 싸이월드까지 뒤졌다.
2010년에 싸이월드에 올렸던 사진에 달았던 코멘트.
누나들은 후회하지 않는다, 아가들
젠가 하고 나서 치우지도 않고 가버리지만
아무것도 안 시키고 모노폴리 세시간 동안 하지만
블랙티 열 번 먹고, 도장 열 개 채워서 아이스까페모카 먹지만
심지어 외상하고 길에서 만나도 모른 체하는 너희들이지만!!1111111지금 생각해보면 너희들이 까페두레에서 놀고 있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까페두레 모습하고 많이 비슷했던 것 같아?하지만 내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만 만나자, 얘들아
이 장면이 너무 그리워서 좀 울었다.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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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에필로그가 남아있지만 오늘 전하고 싶은 마음에 댓글을 답니다.
라라님과 젠젠님 [한 달쯤 라다크]를 써주시고 이렇게 스팀잇을 통해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출판사를 괴롭혀 연재 허락을 맡아주신 스팀시티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한 달쯤 라다크]를 읽으면서 왜 라라님이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쌓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공감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많았어요.
'라다크' 음성도 글자 모양조차 너무 예쁜 이름. 누군가 정성들여 특별히 만든 것 같은 이름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라다크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는데 한 달쯤 라다크를 읽으면서 감히 조금은 라다크에 가까워진 기분이에요.
처음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색감에 반하고 파랗고 파란 하늘에 반했습니다.
그저 살구잼을 먹고 별이 떨어지는 깊은 밤을 바라보고 경이로운 만달라를 원없이 구경하고 두레같은 아지트를 찾아내 좋은 벗들을 만나 깔깔 웃는 순간이 부럽단 생각뿐이었는데..
후반부 여행자와 생활인 사이를 오가며 라다크에 대해 깊어지는 고민과 생각에 놀라기도 했어요.
두 분은 참으로 라다크에 가까웠었고 참으로 많이 사랑하셨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어쩌면 라다크도 사람사는 곳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있으셨기에 라다크를 더욱 더 사랑하고 그리워하신다고 생각해요.
여행하기 좋은 곳은 많아도 고향처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죠.
너무나 매력적인 라다크를 두 분의 시선을 따라 경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라다크! 두 분과 같을 수 없겠지만 글만으로 제 마음에 닿아버렸어요. 감사합니다.
P.S. ebook말고 종이책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ㅠㅠ 너무나 아쉽습니다.
요기 라운디와 젠젠팬 하나 더 생겼나보내요. 알라딘 검색하면 중고책이 검색되요. 저도 거기서 하나샀지요:-)
맞습니다! 팬클럽 어디서 가입하면 되나요? ㅋ아무래도 새책 구입을 힘들 것 같아
아쉽지만 peterchung님 덕분에 알라딘에서 중고책으로 주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머릿속에 흔적을 남기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고물님 마음에 닿아버렸다니 기뻐요. 고물님 여행기 다 읽고 댓글 남겼던 것처럼 우리가 만나면 이런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하겠구나, 그 대화들은 참 재밌고도 슬프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한 달쯤 라다크 종이책은 절판되었는데 판권을 가져와서 다시 출판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고물님 따뜻한 리뷰 너무 고마와요! :-)
라다크주민들과와 함께한 사진보니...
뽀빠이가 사랑한 요사람이 생각납니닷
앗, 올리브네요! 도와줘요 뽀빠이!
글을 읽고 나서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등장하는 '타마라' 라는 도시를 그렸던 것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이렇게 꺼내보아요. 타마라에 도착한 여행자는 오로지 그 도시의 간판만 보고 떠날 뿐이라 그 도시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라다크를 비롯해서 "거긴 가난하지만 행복지수는 짱이야^^" 라고 맘대로 이미지를 덧씌운 나라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저는 그 보이지 않는 도시들 한번 제대로 보겠다고 이런 저런 안경도 써보고, 가까이 다가가서도 보고, 멀리 떨어져서 보고도 했는데, 결국 그 경계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전에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는데, 그 자리가 참 외로웠어요. 여행자도 아니고, 현지인도 아닌 그 자리가요. 외로워서 젠젠님하고 술을 저렇게... 퍼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