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류학자의 초록색 일기장] 바람의 말이 달리는 곳 - 티베트에서 다람살라까지

in #stimcit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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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now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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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는 '바람의 말(風馬)'이 달린다.

'룽따'라고 불리는 이 상상의 동물은 오색 깃발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깃발마다 말 그림과 함께 불경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바람의 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물의 옥상이나 산 봉우리마다 펄럭이고, 바람처럼 빠르고 말처럼 힘차게 부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해 모든 이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아주 기특한 동물이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은 룽따가 보일 때마다 기도를 올리며 바람의 말에 자신들의 소망을 실어 보낸다. 풍년이 들기를, 가축들이 잘 자라기를,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히말라야의 봉우리마다 펄럭이던 룽따가 50년 전부터 티베트를 떠나 저 멀리 북인도에 위치한 다람살라에도 펄럭이기 시작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고, 수천 명의 티베트 난민이 지내고 있으며, 달라이 라마가 사는 다람살라. 다람살라에서 펄럭이고 있는 룽따에는 어떤 염원이 담겨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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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leod Ganj, Dharamsala, H.P, India


다람살라에 가려면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버스로 12시간을 내리 달려야 한다. 해발 2000m나 되는 마을이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다 보면 멀미는 기본이고, 우기인 여름에 갈라치면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는 빗물에 얼굴이 젖어도 그저 참아야 한다. 5년간 매년 다람살라로 향한 나도 나지만, 다람살라에는 수개월간, 혹은 수년간 눌러앉아 있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티베트 불교에 심취한 불교 신자들, 푹푹 찌는 남인도의 날씨를 피해 시원한 북인도로 피신해온 사람들, 티베트 문제에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NGO 활동가들, 나와 같은 티베트 난민 연구자들 등등. 요가 매트를 들고 다니며 요가를 배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티베트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이들도 있다.

대단한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대자연이 펼쳐져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시간이면 동네를 다 훑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동네에 볼거리라고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폭포와 힌두사원, 불교사원이 전부인 다람살라에 사람의 발길은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다람살라에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티베트의 비극적인 역사와 그것을 대변하는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베트 망명정부, 그리고 그곳의 수장 달라이 라마의 명성 때문이다.

티베트 난민 사회의 역사는 1959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과의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나라를 빼앗기고, 당시 24살이었던 티베트의 수장, 달라이 라마 14세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인도로 망명했다. 지도자가 망명하자 많은 티베트인이 줄줄이 그의 뒤를 따랐다. 망명 초기에만 8만 명의 티베트인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했고, 지금도 티베트 사람들의 망명 행렬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제2의 터전이 바로 다람살라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고향을 뒤로하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달라이 라마를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위해(중국에서는 종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의 탄압과 차별을 피해 망명길에 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망명길은 험난하다.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잡히는 장면을 뉴스에서 많이 봐왔지만, 티베트인들의 망명길도 그와 다르지 않다. 중국 공안에게 잡히면 그날로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그들은 정상적인 루트보다는 히말라야 산길로, 낮보다는 밤에, 여름보다는 겨울에 이동한다. 최대한 공안의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찾아서. 제대로 된 등산복을 갖춰 입는 것도 아니다. 평상복 차림으로 히말라야를 넘는 그들은 다람살라에 도착했을 즈음엔 동상에 걸려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버리기 일쑤다. 어른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티베트의 언어와 역사를 배울 수 없는 중국에서 자식들의 교육을 걱정한 부모들이 아이들만 홀로 다람살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망명길에 오른다.

다람살라에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중국화가 진행되고 있는 티베트 본토를 대신하여 티베트의 문화를 보존하고자 한다.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짓고, 전통예술을 보존하기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 세계 각지에 티베트 문화원을 설립하여 티베트 문화를 알리고 있다. 망명한 티베트 사람들이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서도 정체성을 잊지 않고 티베트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망명정부는 고군분투한다.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옛 모습 그대로의 티베트는 지도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달라이 라마가 있고, 티베트인들이 티베트 문화를 보존하겠다고 안간힘을 써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속절없이 변해만 간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다람살라에 가면 그 역사 때문에 상해 임시정부가 떠오르고, 티베트 난민 사회가 형성된 공간의 남루함 때문에 오사카 쯔루하시(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지역)가 떠오른다. 어느 것 하나 자주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그들은 언어와 문화를 빼앗겼으며, 나라까지 빼앗겼다. 티베트는 우리의 또 다른 역사이다.


2010년 여름, 티베트 망명정부의 공무원들과 함께 하게 된 술자리에서 왜 다람살라까지 와서 티베트 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졸업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공부를 마치고 나서 한국 정부를 위해서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 없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그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여권을 가지지 못하는 무국적자들이다. 국적을 갖지 못해 서러워하고, 망명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애국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는 나의 대답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어느 정도 상상이 된다.

여전히 전세계에 수많은 무국적자가 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국적란에 아무것도 써놓지 못하는 이들, 그래서 외국에 갈 수 없는 이들, 노란 난민증을 들고 외국에 나가려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노력을 해야 하고, 잔뜩 긴장한 채로 입국심사대에서부터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이들. 우리에게 있어 대한민국 국적이나 대한민국의 여권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권 하나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이 지구상에는 많다는 말이다.

티베트 난민 중에는 물론 인도 국적을 취득한 이들도 있고, 제3 국으로 망명해서 미국이나 스위스의 국적을 가지게 된 이도 있지만, 티베트를 자신의 조국으로 삼고 끝까지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가진 노란 ‘난민증’만이 그들이 티베트인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도, 티베트 난민들에게 있어 '티베트'는 국가 이상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티베트는 영토에 한정된 국가가 아닌, 전 세계에 퍼져있는 티베트인들을 국민으로 하는 국가인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티베트인'으로 살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히말라야를 넘는다. 티베트 난민 사회가 형성된 지 어느덧 50년이 훌쩍 넘어, 지금은 티베트를 가 본 적이 없는 난민 2, 3세들이 다람살라 주민의 대부분이지만, 그들은 확신의 찬 목소리로 말한다.


I am a Tibetan. Tibet is m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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