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출발해 싱가포르까지 가는 셀러브리티 컨스틸레이션호는 굉장히 오래된 배이다. 여행사나 선사들에서는 늘 ‘새로 만든 배’를 앞세워서 판매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만든 배일수록 시설이 믿기 힘들 만큼 ‘혁신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만들어진 크루즈들은 ‘놀이동산’을 배 안으로 옮겨왔다고 비유 할 정도로 다채로운 액티비티를 가지고 있다. 워터슬라이드에 암벽등반, 아이스링크, 집라인, 인공파도 타기 등 배에 따라 종류는 다르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놀이기구들이다.
2002년에 만들어지고 올해 18년째 운항하고 있는 91,000톤에 달하는 셀러브리티 컨스틸레이션호는 다른 크루즈에 비해 거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고전은 영원하다고. 나는 이 배의 클래식하고 올드함이 좋았다.
배는 1층부터 12층까지 있는데 2주를 보낸 이 배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장소는 두 곳이다. 10층의 야외수영장과 11층 구석의 선베드. 나는 어디를 가든 어디를 머무르던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아지트를 찾는 편이다. 대학교 때는 중앙 도서관 근처의 외진 벤치가 그랬고 아파트에서는 테니스장 옆의 벤치, 라다크에서는 스피툭 곰빠가 그랬다. 해가 있으면 옷을 훌렁훌렁 벗고 해를 좇으며 비타민 D를 충전하는 서양인들의 특성으로 눈에 보이는 야외 선베드는 늘 만석이었다.
선베드는 10층 수영장 좌우로 나란히 11층 배의 둘레를 따라 듬성하게 있는데 길이가 300m에 달하는 배를 요리조리 살피며 왕복한 결과 나는 갑판 끝쪽의 선베드에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곳은 내 아지트가 되었다. 책 한 권, 이어폰, 핸드폰, 술 한잔을 들고 그 선베드에 누우면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고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거기에 풀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스낵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종이 책을 읽다 지겨우면 태블릿의 다른 책을 펼쳐 봤고 몇 개 담아오지 못한 노래를 반복재생하며 술을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해가 슬금슬금 내려와 하늘에 자기를 물들이고 있었다. 망망대해에서 바라보는 노을이란 얼마나 외롭고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존재하는 해는 유독 더 크고 또렷했고 뿜어내는 붉은 기운 또한 농도가 짙었다. 그럴 때면 읽던 책을 접고 넋을 잃고 노을을 바라봤다. 천천히 하강하던 해는 마지막에는 도망치듯 빠르게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아침에는 기력을 못쓰다가 저녁이 되면 쌩쌩해지는 올빼미인 내가 낮 수영 보다 밤 수영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녁에는 대부분 정찬과 쇼로 사람들이 바쁘기 때문에 수영장은 늘 텅 비어있었고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수영할 때마다 난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 커다란 수영장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었기 때문. 풀 바의 바텐더 외에는 아무도 없는 10층 야외의 수영장에는 갑판의 번쩍번쩍한 조명이 내리비쳤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화려하지만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 홀로 있다는 건 폐장한 놀이동산의 유일한 손님 같다는 느낌이 들어 묘하게 흥분됐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수영을 했다. 수경까지 쓰고 수영선수인 마냥 자유형으로 왕복을 하기도 하고 개헤엄을 치기도 하고 배영을 하기도 했다. 검은 하늘은 밤바다와도 닮아 있어서 수영장에 벌렁 누워 배영을 하고 있자면 꼭 밤바다를 수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물장구치던 팔을 멈추고 가만히 밤바다를 닮은 밤하늘에 몸을 맡겼다. 그러면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고요한 밤하늘의 포근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어 이내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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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이 장난 아닙니다. 리듬을 붙여 노래로 부르고 싶을 정도예요~ 루룰루~~♪
문득 잼잼님이 어디든 씩씩하게 떠날 수 있는 건 어디서든 자신만의 아지트를 찾아내시는 능력이 있으셔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낯선 곳에서도 위로받을 수 있는 한 평의 공간. 밤의 수영장의 젠젠님을 상상하며 파티가 끝난 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불쑥 나타난 개츠비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개츠비와의 차이라면 젠젠님은 그 고독을 즐기실 줄 안다는 점이죠 ㅎㅎ!
어디를 가든지 나만의 공간이 주는 위로란 특별하죠! 그것이 저를 씩씩하게 떠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일리가 있네요!! 개츠비와 저의 차이라면 개츠비는 부자고... 저는 가난......으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