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의 공주님

in #zzan4 years ago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회사일이 한 번 스텝이 꼬이면서 후유증이 생각보다 오래갑니다.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들어오니 그 동안 쌓인 소재가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남들 늦은 휴가로 가을 바다를 다녀오고 단풍 구경을 갈 동안
책상에서 꼼짝 못 하고 일심동체로 살아 겨우 마무리 단계입니다.

모처럼 친구들 몇이 카페에 들러 그간의 일을 얘기하는데
테이블에서 진동이 전해집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는 언성부터
높이는데 주차를 어정쩡하게 해 놓고 들어왔더니 그새 일이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부재중이 몇 통 떠있는 걸 못 들었으니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얼른 달려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차를 빼주었습니다.
그리고 상가 주차장에 자리가나서 삐기고 차를 대고 다시 들어와
친구들과 어울리고 한 참 만에 나가보니 이젠 조금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차를 아무리 살펴봐도 연락처가 없습니다.
방법이 없어 차 빼시면 연락 해 달라고 적어 유리창에 붙이고
친구들과 헤어져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길게 잡아 한 시간이면 되겠지 했는데 기척이 없습니다.
지루하기도 하고 피로가 몰려오고 연달아 하품을 하며 눈까풀도
점점 무거워져 이대로 있기가 힘들어집니다.

잠시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며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엄마아빠로
보이는 사람들이 예쁜 아이를 데리고 다가옵니다. 한 눈에 차주라는
걸 알아 화도 났지만 반가웠습니다.

얼른 차를 빼주기만 바랬는데 아이가 아빠에게 뭐라고 하자
얼른 가방에서 음료로 보이는 것을 꺼내 빨대를 꽂아 입에 물려줍니다.
그런데 이 예쁜 딸내미 물 먹는 모습이라니

한 모금 빨아먹고 아빠하고 뽀뽀 한 번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하는 병아리도 아니고
도대체 저 예쁜 짓은 언제 끝나려는지...


대문을 그려주신 @hyunyoa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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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감칠맛이 돕니다.
속은 상했을지 몰라도 큰 힘은 아니지만 보팅으로 위로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