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엔 웃는 일이 제일 쉬웠다. 우스울 때 웃는 건 물론이고, 멋쩍을 때도, 어색할 때도, 아무 생각 안 할 때도, 좋을 때도, 싫을 때도 실실거렸다. 제일 이상했던 건,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짓곤 했던 일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석규가 빙그레 미소 짓는 걸 떠올리며 같이 웃곤 했다. 카메라가 날 찍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상황이 난처할 때도 가장 먼저 나오던 나의 반응은 웃음이었다. 내 웃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놓을 수 있는 조커 패와 같았다. 조금씩 결이 다른 웃음들은 저마다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고, 구구절절한 말보다 웃음 하나로 많은 걸 설명하려했었다. 20대 시절엔 그게 가능했다. 웃음 하나로 많은 걸 설명하는 일 말이다. 내 웃음을 보고 대부분의 상대방은 그 상황에서 들어야 할 말을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발령을 받기 전 잠시 기간제로 일할 때, 그 학교가 복지 시범학교로 선정된 탓에 아이들 가정 방문을 다닌 적이 있다. 그때도 웃음을 얼굴에 장착하고 이 집 저 집을 다녔다. 그 웃음에 별 의미는 없었다. 굳이 뜻을 찾는다면, '그래요, 이렇게 학생들 집에 다니는 게 전 어색해요. 소금 뿌리지 않으실 거죠? 개는 단단히 묶어 두셨죠?' 하는 의미 정도 되겠다.
한 아이의 집에 갔는데 방에 앉아 두리번거리던 내게 부모 대신 아이를 키우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사는 꼴이 참 우습죠?"
"아, 아닙니다." 내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상황에 따라 웃음을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구나, 상대가 조롱으로 받아 들일수도 있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생각했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내 웃음은 상대에게 많은 해석의 여지를 불러일으켰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뜻 없이, 그저 선의로, 심심해서, 배가 고파서,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실없어서 웃는다고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웃던 웃음에 하나하나 의미를 새겨 넣고 상대가 어떻게 해석할지를 미리 헤아리기 시작하자, 웃는 일이 점점 물에 젖은 솜이불이 되어갔다.
이제 중년으로 돌입하는 나이가 되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내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예전엔 웃는 게 가장 쉬웠고, 일상적이었었는데 말이다. 난 지금도 무표정을 장착하고 손가락을 놀리고 있다. 웃긴 일 없는데 한 번 웃으려면 꽤 에너지를 써야한다. 예전엔 웃을 때 나 스스로 밝아졌다는 자의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우습게 보인다는 자의식이 생긴 것 같다. 나도 별 수 없이 무뚝뚝한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인가.
난 아직도 실없고, 심심하고, 외롭고, 어색하고, 무안하고, 조마조마할 때, 웃고 싶은데. 나도 그런 순간에 둘러쌓여 있다는 걸 들키고 싶은데. 나이 먹은 나는 그런 순간들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철벽 수비 전술만 경기 내내 구사하는 축구팀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상이 이어진다. 허술하게 보이면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던 청년기는 어디로 가고, 쉽게 보이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진다, 는 근본 없는 철학이 내 삶을 잠식하고 있다.
웃는 법을 완전히 잃기 전에, 입 꼬리 주변 근육들을 부지런히 문질러야겠다. 잃어버린 '실없음'을 다시 주워들고, 가려왔던 허술함을 만방에 공표해야지. 아, 생각만 해도 설레고… 피곤하다.
20대 때는 웃는 표정이 나도 모르게 베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오해받는 일도 있었구요.. .
예전 대전역 앞에서 표정 때문에 당황했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ㅎㅎ 경찰 앞에서.. ;;;
가끔 오해가 생겨도 웃음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있는 건 좋은 일 같아요^^
굳어가는 표정을 다시 풀어야겠습니다ㅎ
순수한 웃음이 가진 힘을 믿어요. 하지만 쉽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람을 향한 계산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서 제 웃음도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가식 또는 허무함이 짙어진것 같아요. 무뚝뚝한 중년 아저씨가 아닌 따듯한 미소를 가진 다정한 어른일거라 믿어요.^^ 오랜만에 읽는 솔메님 글,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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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웃음 앞에선 어떤 계산도 뛰어 넘어 함께 웃게 되는데, 그렇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오랜만에 반가워요. 레일라님 같은 정겨운 이웃이 있어서 아주 떠나지 못하고 종종 들르게 됩니다ㅎ
솔메님 에세이가 다시 시작되는건가요?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어떤 의미를 담아 보듯 솔메님이 편안히 그리고 마음껏 실없이 웃으시길 바랄게요 . 결국 진심은 언제나 전해지니까요.
그리웠다고요 이런 에세이 ㅋ
글쓰기를 좋아하던 많은 이웃들이 떠나고 이곳이 좀 헛헛해졌는데, 함께 실없이 웃을 수 있는 고물님이 있어서 좋습니다. 깨 볶는 신혼생활 보내고 있지요?^^
에세이는 우리의 힘! 자주 보아요ㅎ
집에서는 웃고, 밖에서는 엄근진 하시는것이 좋을듯 하옵니다. 중년의 카리스마. 포기하시면 아니되옵니다. ㅎㅎ
카리스마와 가벼움의 그 경계를 지키는 게 참 어렵더라구요.ㅋㅋ 두 마리 토끼 모두 싹!
할머니의 말씀을 들었을 때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후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웃음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ㅜㅜ
허술하게 보이면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쉽게 보이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진다고 생각한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에요...
저도 청년기때 너무(?) 많이 웃었는데 웃음을 적절히 줄여가고 있어요~~~~~ 쉽게 보이는 순간 피곤해진다고 저도 근거없는 철학이 생긴거 같아요... 정말 그럴지도요..
쉽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고 쉽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보석 같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세월이 지나가며 이제 중년을 진입하는 우리에게 생겼으면 해요..^^
그리고 이제 다시 우리의 매력인 허술함을 조금은 무장해제했으면 합니다.. ^^
역시 메가님도 허술한 매력의 소유자시지요. 전 이미 허술 매력을 느껴왔답니다ㅋㅋ
그렇게 마음껏 허술해도 될 시기가 지난 것 같지만, 그래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허술한 웃음을 마음껏 날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려면 나부터 실실 웃는 게 필요하겠죠ㅎ
'보석 같은 눈'이 아직 없다면 웃어가며 실망도 해가며 사람들을 알아보는 수 밖에요^^ 메가님에게도 웃는 일이 더 많아지길요!
<마음껏 허술해도 될 시기가 지난 것 같지만>
ㅎㅎㅎㅎㅎㅎㅎ
이 말씀 너무 웃프네요..ㅎㅎㅎ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려면 나부터 실실 웃어야 (나부터 마음을 열어야) 된다는 말씀이 정말 맞는거 같아요~~~
웃어가며 <실망도 해가며> 사람들을 알아보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과정을 생각하면... 급 피곤해지네요 ㅎㅎㅎㅎㅎ
쏠메님의 얼굴공개인가 하고 냅다 들어왔더니 한석규...ㅎㅎㅎ
반가워요. 더 자주 뵐게요.^^
타타님, 잘 지내셨지요?^^
자주는 못하지만 가끔씩 들어와 둘러봅니다.
타타님 뵈니 참 반갑습니다.ㅎㅎ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마니 받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