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책> 그 나라들의 전쟁

in #zzan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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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9분 ·
#산하의오책
그 나라들의 전쟁 - <2차대전의 마이너리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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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계대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은 두 개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따지고 보면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전쟁인데 왜 세계대전인가 의문을 가질 만도 한데 20세기 초중반 ‘세계’는 거의 ‘유럽’이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세계대전’보다는 ‘유럽전’에 가까웠던 1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인도군 참전자가 100만 명이 넘고 저 ‘불굴의 베트남 민족’도 10만 명이 넘게 유럽으로 실려가 독일군과 싸웠으니까. 일본도 연합국의 일원으로 ‘칭따오 맥주’로 유명한 독일의 조차지 칭따오를 공격했고 아프리카에서도 식민지들끼리 전쟁을 벌였으니까. 제 2차 세계 대전은 뭐 굳이 말할 이유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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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문제를 좁혀 보면 2차 세계대전은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VS 독일 일본’의 전쟁으로 대개 축약된다. 유럽에만 해도 수십 개의 나라가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별로 보이지도 않고 부각되지도 않는다. 전쟁의 발톱이 ‘그 강토 그 산하를’ 모질게 휩쓸고 지나가고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생존해 보겠다고 발버둥친 나라와 민족이 유럽에도 부지기수가 다른 대륙에도 엄청나게 많은데 그들의 흔적을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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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2차대전의 마이너리그>는 바로 유럽대륙의 ‘자잘한 나라’들의 전쟁 기록이다. 폴란드, 핀란드, 그리고 이탈리아. 한때 히틀러의 숭배를 받았던 원조 파시스트 뭇솔리니의 이탈리아, 당당히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가 왜 ‘자잘한’ 나라냐고 나도 저자에게 묻고 싶긴 했는데 그 이유는 책을 보면 안다. 이 ‘20세기의 시저’의 나라가 전쟁에 어떻게 휘말렸고 얼마나 ‘위대한 허망함’을 보여 주는지가 잘 나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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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의 핵심은 폴란드와 핀란드였다. 폴란드의 역사는 퀴리 부인 위인전을 읽은 사람이면 대충 안다. 폴란드 어 수업을 받던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 부인의 어릴 적 이름)에게 러시아 장학관이 들이닥치고 마리는 훌륭한 러시아말로 그를 만족시키고 엉엉 울었던 장면은 대부분의 586들이 기억할 것이다.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으니까. 폴란드는 중세 때 반짝 잘나갔던 걸 제외하면 근세에 들어와서는 거의 고래등 사이의 새우살 샌드위치였다. 일면 한국과 비슷하다. 강대국들에게 갈갈이 찢겼던 폴란드는 1차 대전 후에야 독립국의 지위를 지닌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의 진원지가 되는 비극을 맞는다. (응 이것 어디서 많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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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리톨 껌의 나라 핀란드도 우리에게 기시감을 준다. 그 나라가 국경을 면한 러시아라는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다. 1930년대 말 핀란드 인구는 박박 긁어야 300만명. 그런데 지척에 레닌그라드라는 ‘정신적 수도’를 둔 소련의 인구는 1억 5천만이 넘었다. 15억 옆에 붙은 5천만과 비슷한 처지. 그런데 소련은 ‘수도와 너무 가까운’ 핀란드 국경에 불만이 있었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핀란드에도 영토적 야욕을 품는다. 그래서 소련은 핀란드를 ‘혼내 주기로’ 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응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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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밀덕 느낌도 있어서 곳곳에 잡다하고 어려운 이름들의 무기들을 설명하고 있기도 한데 그런 문제에 관심 없는 분들은 대충 건너 뛰어도 무방하다. 단지 “우리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관점으로 세우고 이 책을 읽으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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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백범 김구는 미국 OSS와의 합동 작전이 무산된 것을 통한으로 여겼고 지금도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성공했더라면 우리가 승전국이 될 수 있었다고 아쉬워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강대국들이 폴란드와 폴란드 사람들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보면 ‘승전국’의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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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에 분할 점령된 뒤 영국으로 온 폴란드 망명 정부와 폴란드 망명 군단 수십만은 그야말로 사자같이 싸웠다. 영국 항공전 당시 폴란드 파일럿들은 영웅적인 항전을 벌였고 이탈리아 전투의 갈림길이었던 몬테 카시노 수도원 전투를 매조지한 것도 폴란드 2군단이었다. 영화 <머나먼 다리>에서 폴란드 장교 진 해크먼이 이끄는 폴란드군은 영국군을 구하기 위해 거의 ‘죽으러’ 갔고 영화 <이미테이션>의 소재가 된 에니그마 해독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 폴란드인들이었다. 심지어 폴란드에 남은 저항군들은 수도 바르샤바를 통째로 파괴하는 전면적 봉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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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는 승전국 지위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미국 영국 소련의 부당한 (폴란드 입장에서는) 합의를 수용해야 했다. 여기에 반발하는 폴란드인들에게 던진 처칠의 말이란다. “이번 전쟁에서 연합국의 전쟁 수행에 당신들이 공헌한 것이 있는가? 어떻게 당신들은 그리 바보 같은가. 당신들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내 평생 이런 사람들을 본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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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자 윈스턴 처칠의 냉혈함이야 일찍이 보고 들었으나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철면피였을 줄이야. 광복군의 서울 진공이 실현돼 영웅적인 공훈을 세웠다고 치고, 소련과 미국이 38선 경계로 진주한 상황에서 백범 김구가 ‘승전국’ 지위를 요구했다면 아마도 미국의 하지 중장은 역시 처칠이 폴란드 대표단에게 했던 말을 반복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치 정신병동에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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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낀 나라의 비극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면 핀란드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처절하게 보여 준다. 역사의 거의 전부를 스웨덴과 러시아 치하에서 보냈던 핀란드는 1917년 독립을 달성하지만 피비린내나는 좌우익 대결을 벌인다. (응? 어디서 많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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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오래 끌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사람 귀한 나라에서 1만 명 가까이 죽었으니 나름 치열한 내전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소련이라는 ‘진격의 거인’ 앞에서 그야말로 일치단결 거국적인 항전을 벌인다. <겨울 전쟁>으로 알려진 핀란드와 소련의 전쟁을 비교할만한 역사적 사례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정도가 아닐까 싶다. 고구려 인구 기백만이던 시절 100만 대군을 들이민 수나라나 300만 인구의 나라 핀란드에 연인원 100만의 병력을 동원한 소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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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격의 거인들이 초전에서 참혹 그 자체의 패배를 맛본 것도 같고 끝내는 큰 나라의 물량 공세로 결국 이 소국들이 무릎을 꿇은 것도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핀란드의 생존 본능이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절대 권력 하에서 외교적 실책을 저질렀고 백제라는 동맹국을 잃었으며 내분이 겹쳐 멸망하지만 핀란드는 그토록 용맹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소국의 생존 전략을 방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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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족을 인정하면 고개를 숙였지만 적의 적에게 접근하여 칼을 갈 숫돌을 빌릴 줄 알았고 적과 적의 적이 싸우면 냉큼 적의 적 뒤에 업혀서 칼을 휘두를 줄 알았고, 적의 적이 밀리고 적이 다시 득세할 기미를 보이자 냉큼 돌아서서 한때 동맹군이었던 적의 적에게 칼을 던지는 제스추어를 취할 줄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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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 대한 복수심은 불탔지만 잃어버린 영토 이상 진격하여 소련의 비위를 할퀴지는 않았고 레닌그라드 포위전 참여도 거부했다. 독립한 이후 ‘대 폴란드’를 부르짖으며 (폴란드에도 중세 폴란드를 로망으로 한 환빠(?)들이 있어서 프로이센을 자신의 신하 나라였다고 우겼다고 함) 주변을 자극했던 폴란드와 달랐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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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 후 핀란드 군 사령관이자 국부(國父)라 할 만네르하임은 정치인들에게 전쟁에서 발을 빼자고 건의하고 대통령 리티는 만네르하임의 건의를 받아들여 친영국(親英國)파로 유명한 이를 외무장관에 앉힌다. 꿩은 못 구워 먹어도 알은 살리겠다는 지혜. 도랑은 못 쳐도 가재는 건져 보겠다는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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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는 전쟁을 수행하던 대통령 리티를 사임시키고 만네르하임을 대통령으로 세우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다. 전쟁이 끝난 뒤 대통령 리티는 ‘전범’(戰犯)으로 10년 형을 언도받았다. 어쨌건 독일군을 도운 것은 맞으니. 그러나 핀란드인들에게 그는 만네르하임 다음 가는 영웅으로 남게 된다. 그들의 최대 공적은 핀란드의 ‘생존’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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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독립된 페이지에 소개된다. 핀란드의 영웅 만네르하임부터 저격수의 전설 시모 하이하, 폴란드의 크롬웰이자 마리우스라 할 피우스트스키, 폴란드군에 종군(?)했던 곰 (진짜 곰!) 보이텍, 그리고 이탈리아의 일부 용맹한, 대개 코믹한 군인들 이야기 등등 다채롭고 풍부하다. 이탈리아는 역시 제외하고 (이탈리아 군도 침략군이 아닌 자신의 영토 방위전이었다면 완전히 달랐겠지만) 핀란드와 폴란드의 인물들은 참 우리 역사의 인물들과 많이 접목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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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선 닮았지만 어떤 면에선 전혀 닮지 않았기에 그렇다. 끝까지 항일 무장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았던 김일성은 전쟁을 도발하지 않고 그가 했던 말대로 ‘돈 있는 자 돈으로 지식 있는 자 지식으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면서 평화로운 통일 한국(조선)을 염원하며 매진했다면 만네르하임이 될 수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김씨 조선 왕조의 건설자로, 지금까지도 남북을 철천지원수로 만든 전쟁의 도발자로 자리매김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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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이 책의 핀란드와 폴란드 부분만 읽어 보시면 어 이 사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하는 사람들을 여럿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아쉬웠고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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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어제 20세기 사회당 조사하다가 1,2차대전 찾아보던 중이었습니다. ^^